시기가 또 희한하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KFA) 회장이 총수로 있는 HDC그룹의 지주사 HDC, 그리고 주력 계열사 HDC현대산업개발이 KFA와 손을 맞잡았다. 정 회장의 '4연임'을 내다본 파트너 계약이란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KFA는 23일 "HDC, HDC현대산업개발과 공식 파트너 신규 계약을 체결했다"라고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오는 6월 1일부터 2028년 5월 31일까지다.
향후 HDC와 HDC현대산업개발은 공식 파트너 기업이 갖는 각종 권리를 갖는다. KFA 주최 각급 대표팀 경기 때마다 A보드 광고와 전광판 광고, 프로모션 활동 등을 할 수 있으며, 축구대표팀을 활용한 기업 홍보도 할 수 있다.
정경구 HDC 대표이사는 "대한민국 축구의 성장과 성공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이번 파트너십을 통해 HDC와 HDC현대산업개발이 축구와 스포츠를 사랑하는 팬들과 더 가까워지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김정배 KFA 상근부회장은 "파트너들과 함께 축구가 함께하는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더욱 힘쓰겠다"라고 했다.
이번 파트너십 발표는 정 회장이 4연임을 노리고 체결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 충분하다.
천안축구종합센터 건립 여파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는 KFA가 대기업을 파트너사로 맞이한 것은 호재일 수 있으나, 정 회장의 힘을 키우기 위한 의도성 짙은 파트너십 체결이란 시선이 뒤따른다. HDC의 수장이 정몽규 KFA 회장이다. 또 HDC그룹이 가장 많이 힘을 주는 계열사가 바로 현대산업개발이다.
정 회장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두 곳의 KFA 합류는 그의 4연임 도전을 시사하는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만든다.
정 회장의 사퇴가 시발점이 돼 한국 축구 개혁의 문이 열리길 바랐던 축구 팬들은 듣고 싶지 않았을 소식이다.
정 회장은 지난해 승부조작범 포함 각종 비위 행위 가담자 100명의 사면을 의결했다가 비난 여론 속 철회했다. 이후 절차 없이 무능력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A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해 한국 축구 역사에 요르단전 패배로 A대표팀이 아시안컵 4강에서 탈락하는 ‘흑역사’를 남겼다.
더 나아가 23세 이하(U-23) 대표팀의 파리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 A대표팀 감독 선임 백지화 등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이로 거론되며 정 회장은 현재 빗발치는 사퇴 여론 속에 있다.
심지어 ‘4연임 도전’ 시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정 회장은 지난 16일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총회에서 AFC 집행위원으로 선출됐다. 임기는 2027년 정기총회까지다. 사퇴 요구에 응하기보단, 오히려 자신의 힘을 국제적으로 키웠다. 사퇴를 염두에 둔 사람의 행보로 전혀 보이지 않는다.
체육단체장은 3연임부턴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해야 도전 가능하다. 단체장이 국제단체 임원 자리에 오르면 공정위 심의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 회장은 지난 2월 클린스만 감독 경질 기자회견에서 4연임에 관한 질문을 받고 "2018년 축구협회 총회 때 회장 임기를 3연임으로 제한하기로 정관을 바꾼 적 있다. 그러나 대한체육회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승인하지 않았다. 그걸로 대답을 갈음하겠다”라며 우회적으로 4연임 욕심을 드러냈다.
눈치보지 않고 자신의 힘을 키워가는 정 회장의 행보에 축구 팬들의 불길한 예감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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