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 낙하산 MC 등 외압 의혹에 대해 KBS PD들이 목소리를 냈다. 고전적인 방법의 투쟁은 물론, 외부 투쟁 등으로 ‘역사저널 그날’을 살리고 지금의 사태를 만든 배후를 반드시 찾아내겠다는 각오다.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에서 KBS PD 협회가 ‘역사저널 그날 낙하산 MC 사태’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 자리에는 김세원 KBS PD협회 회장, 김은곤 KBS PD협회 부회장, 조애진 언론노조 KBS 본부 수석부위원장, 기훈석 언론노조 KBS 본부 시사교양 중앙위원 등이 참석했다.
‘역사저널 그날’은 2013년 첫 방송된 뒤 지난 2월 종영했다. 제작진에 따르면 재정비 후 시청자들과 만날 예정이었으나 MC와 패널, 전문가 섭외 및 대본까지 마친 상태에서 사측이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 미디어 특위 위원 등을 지낸 전 KBS 아나운서 조수빈을 낙하산 MC로 밀어붙이려다 무산되자 방송을 폐지키로 했다. 이에 조수빈의 소속사는 “진행자 섭외 요청을 받은 사실이 없다. 또 해당 프로그램 진행자 선정과 관련해 KBS 내부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며 “무엇보다 해당 보도에서 조수빈을 ‘낙하산’이라는 표현과 함께 특정 시각에 맞춰 편향성과 연결 지은 것에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지난 2월 11일 ‘역사저널 그날’의 종영 이후 3개월 간의 프로그램 개편 과정이 공개됐다. 김은곤 KBS PD 협회 부회장은 “4월 4일 유명 배우가 MC로 섭외됐고, 4월 5일 제작 본부장에게 섭외를 보고했다. 아이템 5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코너 촬영도 마쳤고, 4월 30일 녹화를 앞두고 있는데 조수빈을 MC로 기용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본부장 면담 요청을 했지만 거부 당했고, 5월 1일에는 박민 사장에게 호소문을 메일로 전달해 사장이 부사장에게 진상조사를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5월 8일에는 조수빈 측이 매니저를 통해 일정상 MC를 하지 못한다고 통보했다. 5월 10일에 제작본부장은 프로그램 무기한 보류, 제작진 해산 등을 지시했다. 내부적으로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판단해 입장문을 회사 게시판에 게재한 뒤 보도가 나갔다”고 밝혔다.
김세원 KBS PD 협회 회장은 “제작진은 고민 끝에 3달의 과정 끝에 유명 배우를 섭외해 좋은 기회를 맞았다. 이를 보고 했으나 본부장은 스스로 말하지 않았으나 다른 사람이 선정한 MC를 이야기했다. 제작진 의견은 무시됐고, 반복을 거듭한 끝에 사측에서는 제작 중단, 제작진 해산 등을 결정했다. 따라서 ‘역사저널 그날’을 우리는 당분간 볼 수 없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 지금이라도 준비 과정 그대로 재개되길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이번주 내에 실현되지 않으며 본부장 사장을 비롯해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겠다. 강경하게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조애진 언론노조 KBS 본부 수석부위원장은 “밖에서는 KBS가 아무것도 안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사실 시사교양국 CP 팀장들은 매일 같이 말도 안되는 지시에 고통 받고 있고 평PD들은 중간 간부들이 전한 것에 따지고 거부하고 체념하며 버티고 싸우고 있다. 이런 매일매일이 기사화되지 않을 뿐 프로그램과 제작자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 프로그램을 만드는데만 온전히 하루를 썼다면 불합리한 지시에 에너지를 나눠 써야 해서 통탄스럽다. 화가 나는 건 6~7년마다 이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 국민의 방송이라고 하는데 숟가락 얹으려는 사람이 많다. 2500원 내서 권력, 자본에도 흔들리지 말라고 숙제 받은 게 KBS다. 이 프로그램은 누군가의 것이 아니다. 밖에 나가서 프로그램 팔고 다니지 말고 할 말 있으면 치열하게 논쟁하고 제작 논리로 이야기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훈석 언론노조 KBS 본부 시사교양 중앙위원은 “옆에서 지켜보면서 드는 의문은 누가 무슨 이유로 조수빈을 꽂았냐는 거다. 누구의 부탁, 청탁, 지시였나.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너무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22년차 PD인데, 각종 외압부터 MC 교체, 아이템 변경은 많이 겪었다. 하지만 이번 사례는 독특함이 많다. 보통 특집 프로그램이나 레귤러 코너로 하지 유명한 프로그램은 부담스러워서 하지 않는다. ‘역사저널 그날’은 10년 넘게 이어오면서 논란이 없었다. 400회 동안 정치적 이슈로 심의를 받은 적 없는 프로그램이다. 논란을 삼지 않기 위해 내부 구호가 ‘논란 제로’였다고 한다. 그렇게 조심스러운 프로그램이다. 갑자기 녹화 근무 3일 전에 MC를 바꾸라고 했다. 교체하려면 최소한 한달 전에는 이야기한다. 3일 전에 안되는 건 상식적이다. 그리고 이유가 없다. 유명 배우와 조수빈의 차이는 다 아실 거라 생각한다. 왜 최소한의 이유도 밝히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말도 안되는 지시에도 이유는 있었지만 이번엔 조직의 기강이라고만 할 뿐이다”고 말했다.
이어 “본부장을 제외한 모든 간부, 모든 PD가 조수빈이 들어온 걸 반대한다. 부장, CP, 국장까지 이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정도면 철회를 하는데 누구의 지시가 있고 명령이 있기에 이런 무리수를 두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납득이 안되는 건 조수빈이 출연하지 않겠다는 거다. 그러면 안하면 되는데 그 사람이 안 한다고 프로그램을 폐지 해야 한다는 거다. 그러다보니 계속 의문이 든다. 제작진, 국장 등 고위간부가 편지를 쓰고 면담하고 읍소하는데도 왜 고위직들은 이런 무리수를 두냐. 누가 그 분을 밀어 넣은 건지, 그 분은 누구의 부탁을 받고 이러는건지 의문스럽다”고 힘주어 말했다.
모두 발언 후 질의응답에서 KBS PD 협회는 “진상 조사 이후 임원들마다 말이 다르다. 책임 돌리기 같다. 제작본부장은 경영진이 결정해서 ‘사장 설득하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부사장은 임원회의에서 말한 적이 없다고 한다. 사장 지시로 공식적인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들은 바 없다. 임원회의 결정 상황이니 무기한 보류라고 들은 게 팩트다”고 밝혔다.
특히 조수빈의 낙하산 MC 의혹에 대해서는 “제작진이 여러 상황을 수습하던 사이, 조수빈 측으로부터 스케줄이 안된다며 ‘역사저널 그날’ 부장에게 연락해 왔다. 공식 섭외를 받은 적 없다며 유감을 표명한 조수빈에게 묻고 싶다. 왜 섭외를 받지도 않은 프로그램에 일정을 핑계로 출연 불가 통보를 했나. 이는 스스로 낙하산 MC임을 인정한 것 아닌가”라며 “섭외 받은 적 없다는 사람이 매니저가 전화해서 안된다고 하겠나. 그게 사실이면 다른 사람이 제작진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건데 그게 더 이상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조수빈이 일정 탓에 MC로 나서지 못한다는 내용이 공유된 단톡방의 사진을 공개했다.
현재 ‘역사저널 그날’은 프로그램이 무기한 보류되고 제작진은 해산 명령을 받은 상태다. KBS PD 협회는 “지금 현재 시점에서는, 만약에 제작이 재개된다면 준비했던 것으로 방송을 다시 할 수 있다. 하루 이틀 씩 멀어질수록 기존 하기로 한 분들 계약 관계, 신뢰가 있어서 어려울 수 있다.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순간에 저희가 하던 고전적인 투쟁 방법, 외부 투쟁 등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KBS PD 협회는 “‘역사저널 그날’을 살리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그와 동시에 세월호 다큐 불방 등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 계속 되는 부분에 그 배후를 밝히겠다”며 “TV 편성 위원회, 공정방송 위원회에도 응하지 않는다면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배임행위를 감사실에 고발할지, 경찰, 검찰에 고발할지 검토하겠다. 위반 사항 등에 대해서도 압박할 것이다. 내부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겠다. 제작진만 외롭지 않게, 모두가 이벤트, 행사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elnino8919@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