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득점 전쟁’이다. 리오넬 메시(36·인터 마이애미 CF)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9·알나스르)가 펼치는 세계 최고 골잡이 각축은 끝을 모르는 듯싶다. ‘신계의 사나이’끼리 벌이는 치열한 다툼의 결말을 보려는 호사가들의 욕구가 충족되기엔, 여전히 시간이 더 필요한가 보다.
신은 좀처럼 끝자락을 내비치지 않는다. 노쇠화의 기미를 보이던 호날두를 되살아나게 하며 꺼져 가던 경쟁의 불씨를 되지폈다. 신의 장난기 섞인 안배에 따라, 메시 쪽으로 기울던 균형추는 다시 평형을 이뤘다.
두 걸출한 골잡이가 원점에서 다시 우열을 가름할 발걸음을 옮기게 된 겨룸의 장은 21세기 한 해 40득점 이상 최다 햇수다. 한 걸음 앞서가던 메시가 주춤한 사이, 호날두가 치고 올라오며 어깨를 나란히 했다. 2023년 상반된 활약을 보인 데서 빚어진 새 판도였다. 조금 과장해 표현하면, 메시는 날개 부러진 매였고, 호날두는 날개 돋친 범이었던 지난 한 해였다.
21세기 들어와, 메시와 호날두는 누가 토를 달 수 없을 만큼 각종 골 기록을 양산하며 세계 축구계를 양분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벌이는 골 경쟁은 지구촌 축구팬들을 매료시키고 흥분시켰다. ‘절대 지존’을 용납하지 않는 양웅의 자존심 다툼은 지난 20년 동안 세계 축구계의 최대 화두였다.
서로 독주를 허용할 수 없다는 듯 두 월드 스타 골잡이가 벌이는 쫓고 쫓기는 추축(追逐)은 이제 연도별 다득점 고지에서도 점입가경의 모양새를 그리고 있다. 한 해 40득점 이상 햇수에서도 똑같은 횟수를 기록하며 더욱 흥미로움을 자아낸다.
2023년 전 세계 최다 득점 기염 호날두, 기울었던 균형추를 되돌려
지난 22일(이하 현지 일자), IFFHS(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는 눈길을 사로잡는 통계를 발표했다. 금세기에 들어와 한 해 40골⁺을 두 번 이상 터뜨린 골잡이들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23년간의 각종 득점 기록을 정리한 의미 있는 통계였다(표 참조). IFFHS가 “최초의 기록 통계”라고 자부심을 내비친 이 자료에 따르면, 모두 28명의 내로라하는 골잡이가 금세기 한 해 40골⁺을 2회 이상 기록했다. 이 가운데 아직 그라운드에서 사라지지 않은 골잡이는 19명이었다.
그리고 최상위 2명은 물론 메시와 호날두였다. 당대를 주름잡는 양웅에 걸맞은 풍성한 골 수확을 거듭해 왔음을 엿볼 수 있는 형상이다. 한 해 40골 이상을 터뜨린 햇수가 두 자릿수를 나타낸 ‘유이’한 골잡이였다. 둘 다 12회씩이나 엄청난 ‘골 사냥’을 뽐내며 그라운드를 누볐다.
사실 한 해에 40골 이상을 포획한다는 건 뛰어난 골잡이에게도 무척 버거운 일이 분명하다. 2022-2023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와 유럽 5대 리그 득점왕에 오르는 무서운 득점력을 과시한 ‘괴물’ 엘링 홀란(23·맨체스터 시티)조차 아직 단 한 번도 한 해 40골 이상을 뽑아내지 못한 데에서도 무척이나 지난한 등정임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도 메시와 호날두는 이처럼 높고 험한 고지를 열두 번씩이나 정복했다. 이 점에서, ‘신계의 사나이’로 일컬어지는 양웅의 경이로운 득점 파워는 다시 한번 놀라움을 안긴다.
햇수론 다름없이 12였다. 그러나 질적 면에선, 차이가 있다. 순도 면에서, 메시가 다소 우위를 보였다. 한 해 70골 이상이라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높은 고지를 정복한 ‘유일’한 존재가 메시였다. 그냥 70골 이상이 아니었다. 물경 90골 벽까지 넘어섰다. 스페인 라리가의 바르셀로나에 몸담고 있던 시절인 2012년, 91득점의 ‘골 태풍’을 휘몰아쳤던 메시였다.
호날두는 이 열세를 60~69골에서 다소나마 만회했다. 네 차례씩이나 이 고지에 올라서며 한 차례에 그친 메시를 넉넉하게 앞섰다. 라리가 레알 마드리드에 둥지를 틀고 역시 메시와 팽팽한 호각세를 보이던 시기에, 4년 연속(2011~2014년: 60→ 63→ 69→ 61골) 대기록을 작성했다.
50~59골에선, 메시가 압도(7-4)했다. 40~49골에선, 호날두가 근소하게 우위(4-3)를 보였다.
연속 햇수에서도, 메시가 호날두를 따돌렸다. ‘바르셀로나=메시’ 등식을 창출했던 시기에, 메시는 11년간 끊임없이 40골 이상을 몰아쳤다. 2009년(41골) 첫 등정 이래 2019년(52골)까지 줄기차게 골 폭풍을 일으켰다. 2020년(25골) 단절됐던 맥은 2021년(43골) 다시 이어졌다. 바르셀로나와 프랑스 리그 1 파리 생제르맹에서 뽑아낸 골로 되살린 명맥이었다.
호날두의 40골 이상 연속 햇수는 9였다. 2010년(48골), 메시보다 한 해 늦게 ‘40골 이상 클럽’에 가입한 호날두는 2018년(49골)까지 기세를 이어 갔다. 하지만 아쉽게도 2019년(39골), 단 한 걸음이 모자라 두 자릿수 연속 등정의 꿈을 날려야 했다.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유벤투스에서 끊겼던 맥은 같은 보금자리에서 다시 이어졌다. 2020년 44골을 뽑아내며 명맥을 되살렸다.
그렇다면 호날두가 메시를 추월하는 반전은 일어날까?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지난해, 호날두는 전 세계 최다 득점(54골)의 기염을 토했다. 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쇠락한 모습을 보이던 시절과는 딴판의 위풍을 자랑하는 요즘이다. 새로 찾아든 둥우리인 사우디아라비아 프로페셔널리그(SPL)에선, 훨훨 날아다닌다.
호랑이 없는 SPL에서, 호날두는 마음껏 활보하는 모습이다. 2023-2024시즌 득점 선두(29골)를 질주한다. 2위(22골)를 달리는 알렉산다르 미트로비치(29·알힐랄 SFC)를 멀찍이 따돌리며 득점왕을 가시화했다. 올해에도 두 차례 해트트릭을 포함해 11경기 12골(이하 24일 현재)의 맹위를 떨치고 있다.
반면, 메시는 페이스가 떨어진 모습이다. 2021년(43골)을 끝으로, 지난 2년 동안(2022~2023년) 단절된 40골 이상의 맥을 되살리지 못하고 있다. 날카로운 득점 감각은 잃지 않았지만, 호날두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출장 경기 수에 발목을 잡힌 듯한 형세다. 올해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6경기 7득점)를 비롯해 9경기에 출장해 9골을 잡아냈다.
과연 올해가 저물었을 때, 메시와 호날두 가운데 한 해 40골 이상 기록의 선두 주자로 나서는 주인공은 가려질 수 있을까?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현재 진행형 승부를 벌이는 양웅의 골 사냥 전개가 어떻게 펼쳐질지 관심을 끄는 2024년이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