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5 16번 홀 세컨샷 상황이었다. 전반에서 보기 하나, 앞선 14번홀에서 버디 하나를 기록 중이던 최은우(29, 아마노)가 우드로 샷을 올렸다. 그 공이 좌측으로 휘더니 갤러리가 몰려 있던 카트길로 날아갔다. 사람들이 황급하게 몸을 숙이거나 자리를 피했다. 누군가 공을 맞았다는 소식이 중계진을 통해 전해졌다.
그런데 막상 현장을 가 보니 공은 카트길 안쪽 러프쪽으로 들어와 있었다. 카트길을 벗어날 수도 있었던 공이 갤러리 몸에 맞고 살아난 셈이었다. 최은우는 이 상황을 매우 죄송스러우면서도 감사하게 생각했다. 우승 인터뷰에서 “공에 맞은 갤러리 분의 휴대전화기가 망가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죄송스러우면서도 그 분 덕분에 좋은 기운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16번 홀 세컨샷에서 갤러리 덕분에 OB를 피한 최은우는 이 홀을 파로 막아낸 뒤 파3 17번홀에서 버디를 잡아 단독 선두에 올라섰다. 최은우는 마지막 18번홀도 파로 잘 지키며 최종합계 8언더파 208타(67-70-71)의 성적으로 우승했다.
최은우가 KLPGA투어 다섯 번째 대회 ‘넥센·세인트나인 마스터스’(총상금 9억 원, 우승상금 1억 6,200만 원)의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경상남도 김해 가야 컨트리클럽(파72/6,818야드)에서 사흘간 펼쳐진 비와 바람과의 사투 끝에 마지막에 웃는 선수가 됐다.
최은우는 이 대회와 아주 특별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해 9년만에 생애 첫 우승에 성공한 대회가 바로 넥센·세인트나인 마스터스다. 올해는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대회에 나섰는데, 사흘 내내 수준급 플레이를 펼치며 와이어투와이어 우승에 성공했다.
대회가 열린 가야 컨트리클럽은 전장이 긴 데다 4월의 변덕 심한 날씨와도 싸워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회 전 최은우도 “가야 컨트리클럽은 전장이 길고 그린이 좁기 때문에 핀을 보고 플레이하기 보다는 그린 중앙을 노리고 플레이해야 한다”고 말한 뒤 “지금 퍼트감이 좋은 상태라 전장이 짧은 홀은 공격적으로 플레이해서 버디를 노려보겠다”고 전략을 소개한 바 있다.
이 전략을 실제 대회에서 빛을 발했다. 최은우는 우승 후 인터뷰에서 “오늘은 플레이가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아 파세이브 하기에 바빴다. 그래도 한번은 기회가 오겠지 인내하며 플레이 했는데, 어렵다고 생각했던 14번홀에서 기회를 잡았다”고 말했다. 최은우는 파4 14번홀에서 4.1미터짜리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며 우승 경쟁에 뛰어 들었다.
최은우와 함께 챔피언조에서 경기한 정윤지가 한 타차 공동 2위, 박현경이 두 타차 공동 4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정윤지와 박현경은 막판까지 치열한 선두 경쟁을 펼쳤지만, 최은우의 뒷심에 트로피를 내줘야 했다.
2위 그룹 중에선 마지막 날 4타를 줄인 루키 이동은의 활약이 돋보였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