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상실의 슬픔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평안해지기를". 간절한 마음을 담아 모두의 '원더풀 월드'를 빈 김지은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근 종영한 MBC 금토드라마 '원더풀 월드'는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직접 처단한 은수현(김남주 분)이 그날에 얽힌 미스터리한 비밀을 파헤쳐 가는 휴먼 미스터리 드라마다. 다소 무거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진중한 메시지와 배우들의 호연으로 이목을 끌며 최고 시청률 11.4%까지 치솟은 끝에 종영했다. 이 가운데 '원더풀 월드'의 대본을 쓴 김지은 작가가 17일 서면을 통해 국내 취재진의 물음에 답했다.
김지은 작가는 '원더풀 월드'를 구상한 계기에 대해 먼저 "우리 인생길의 한 가운데에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고 어두운 숲속을 헤매고 있었다"라는 단테의 신곡 첫 구절로 운을 뗐다. 그는 "나는 계속 걸어가는데,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날은 계속 어두워지는데, 여기서 멈출 수도 없는데. 마치 꼭 제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라고 밝히며 "또 다른 인생길에서 숲속을 헤매고 있을 누군가와 함께 걸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 얘기를 들어주고 싶었고, 저 역시 위로 받고 싶었다. 그 사람이 '은수현'이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은수현이라는 인물을 처음 그려내기 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어쩔 수 없이 작가는 작품을 쓸 때 시청률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라며 "드라마는 예술 문학이 아니라 대중문화이니까. 그런데 처음으로 시청률이라는 숫자보다 오롯이 사람의 마음에 더 집중해보자 생각하고 썼던 작품이 '원더풀 월드'"라고 밝혔다.
그는 "현실이 답답하고 어둡고 희망이 없어 보일 때 사람들은 현실을 닮거나 현실보다 힘든 드라마를 회피하고 싶은 심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원더풀 월드'가 그런 드라마"라며 "담장이 없는 밝은 드라마와는 달리 우리 드라마는 '담장'이 있었던 것 같다.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가 절대 아니"라고 담담하게 인정했다.
동시에 그는 "그런 의미에서 11프로가 넘는 두 자리 시청률이 나온 게 믿겨지지가 않는다. 어쩌면, 어둡고 힘들어도 결국 연대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같이 들여다 봐주신 게 아닐까. 담장이 있는 드라마에 발끝을 들고 안을 들여다 봐주신 분들의 용기와 애정 덕분"이라고 고마움을 돌렸다.
무엇보다 김지은 작가는 "이 자리를 빌어서 이 쉽지 않은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같이 끄집어 내보자고 손 잡아주신 배우들과 요즘 트렌드가 아님에도 편성을 결정해주신 방송사. 그리고 제작사 식구들과 감독님. 스탭분들에게 감사 인사드리고 싶다. 무엇보다 배우들만큼 그 감정선을 따라 보시느라 감정 소모가 크셨을 시청자님들께 이 자리를 통해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고맙다. 이 말은 정말 꼭 꼭 하고 싶었다"라고 강조했다.
그런 김지은 작가에게 '원더풀 월드'를 소화해낸 주연 배우들은 남다른 존재들이었다. 그는 특히 은수현을 소화한 김남주에 대해 "쫑파티 때 누군가 '작가님'하고 불러서 뒤돌아보는데 김남주 배우였다. 그리고는 둘이 아무 말도 못하고 한참을 부둥켜안고 그냥 울었다. 어디선가 은수현이 우리랑 같이 잘 살아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을까"라며 뭉클함을 자아냈다.
그는 "언젠가 김남주 배우가 그런 말을 하더라. 드라마에서 한 번도 모성을 보여준 적이 없다고. 그래서 김남주가 연기하는 모성을 꼭 제대로 보여드리고 싶다고"라 밝히며 "이번 작품에서 은수현이라는 인물은 김남주 배우라는 옷을 입고 제가 만들어낸 캐릭터보다 훨씬 더 입체적인 인물로 살아났다. 대한민국 원톱 여배우로서 지문 한 줄 한 줄도 허투루 보지 않고 손짓 하나, 걸음 하나 옮기는 것조차 작품의 전체적 구도와 심리를 생각해서 너무나도 디테일하게 신중하게 표현해내는 김남주라는 배우 덕분에 '원더풀 월드' 속, 독보적이고 독창적인 김남주 표 모성을 표현했다"라고 극찬을 남겼다.
더불어 그는 "이 작품을 하면서 저를 가장 놀라게 한 배우가 차은우"라며 "‘이렇게까지?’ 할 정도로 권선율이라는 캐릭터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진심으로 선율이를 사랑해주며 성장시켰고, 얼마나 처절하게 고민했는지 옆에서 지켜보면서 감탄했다"라고 혀를 내둘렀다. 그는 "덕분에 차은우 배우는 전혀 밑바닥 인생을 그려낼 수 없을 거 같은 외모로 거친 권선율이라는 캐릭터를 너무나도 섬세하게 때로는 신비롭게 때로는 비련하고 처연하게 그려냈다. 죽어가는 것들 속에만 있었던 권선율이라는 캐릭터는 차은우라는 배우를 만나서 더 깊어졌고 아름다워졌다. 이 자체가 차은우 배우가 가진 무궁무진한 잠재력이자 노력 덕분"이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김지은 작가는 김강우, 임세미에 대해서도 호평했다. "신기하게도 이 두 배우는 제가 예전에 한 번씩 다른 드라마에서 러브콜을 보낸 적이 있었다"는 그는 "그때는 스케줄 때문에 아쉽게도 같이 하진 못했지만, 두 배우를 어떻게 이번에 한꺼번에 만나게 됐는지 너무 행복했다. 그만큼 믿고 같이 가보고 싶었던 배우들이라 내심 너무 기대했는데, 정말로 그 기대 이상이었다"라고 밝혔다.
먼저 김강우에 대해서는 "김강우 배우가 맡은 강수호라는 인물은 어쩌면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인물이었을 것"이라며 "최종회를 봐야 이 인물의 진심이 나오는 터라 한순간의 실수로 나락으로 떨어진 후 온갖 욕을 먹으면서도 꾹꾹 눌러가며 감정을 연기하는 걸 보면서 김강우니까 해냈구나 감탄했다"라고 호평했다.
이어 "우리 주인공들이 무조건 나쁜 사람도 없고 무조건 좋은 사람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임세미 배우가 연기하는 한유리도 참 나쁘지만 또 애처로운 인물"이라며 "다른 배우가 했으면 굉장히 미워 보였을 캐릭터를 임세미 배우는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미움을 받아가면서도 은수현 곁을 단 한번도 떠난 적이 없는. 돌아보면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는. 그래서 결국엔 수현으로 하여금 다시 손을 내밀도록 한 건 한유리를 연기한 임세미 배우의 힘"이라고 덧붙였다.
더불어 그는 은수현의 엄마로 등장한 원미경에 대해 "이번에 참 신기한 경험을 한 게, 제가 쓴 대사가 원미경 배우님의 입을 통해서 나오면 그 울림이 커지고 뜨거워지는 거다. 도대체 어떠한 힘을 가지고 계시길래 얼마나 큰 내공이 있으시길래 그러는 건지 저로서는 그저 경이로웠다. 대사 한 줄 한 줄에 달라지는 표정을 보며 저도 계속 반복해서 보면서 공부 중이다. 작가를 끊임없이 공부하게 만드는 배우"라고 공로를 돌렸다.
끝으로 김지은 작가는 '원더풀 월드'를 통해 전하려던 메시지에 대해 "은수현의 입을 통해 말씀드렸듯이 ‘부디 상실의 슬픔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편안해지기를, 세상이 그들에게 조금은 더 다정하기를, 아픔을 이겨내고 있는 당신에게도 아름다운 세상이 오기를, 그래서 언젠가는 아픔이 덜한 시간에 가 있기를’ 이것이 이 드라마 제목이 원더풀 월드인 이유이자 이 드라마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라고 밝혔다.
그는 "아픈 과거에 고통받은 분들이 조금은 아픔이 덜한 시간에 가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으로, 이 세상이 상처 입은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덧붙여 뭉클함을 더했다. / monamie@osen.co.kr
[사진] MBC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