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담아 힘차게 울린 승전고였다. 단순한 한판의 승리를 뛰어넘어 대한민국 축구가 심기일전하는 전기를 구한 귀중한 1승이었다. 26년 만의 설욕은 통쾌했고, 갈등의 해소는 개운했다.
‘원망의 무대’를 ‘희망의 땅’으로 바꿔 품었다. 26년 전, 참으로 뼈아팠던 1패의 쓰디쓴 맛을 안겼던 라차망칼라 스타디움이었다. 긴 시간이 흐른 지금, 그곳은 이제 새출발을 다짐하고 나선 한국 축구에 희망의 빛으로 다가왔다.
그때는 야속했다. 금메달의 꿈이 물거품처럼 스러졌다. 한국 축구가 거닐어 온 아시안 게임 역사에서, 몇 안 되는 믿기 힘든 패배의 나락에서 허덕이게끔 한 라차망칼라 스타디움 아니었던가? 세월은 180⁰ 반전의 묘미를 자아냈다. 내환에 시달리던 한국 축구 국가(A)대표팀이 반목을 씻어 내고 화합을 이루는 데 바탕이 될 간절한 1승이 분출된 토양이 됐다.
태국전에서 구한 ‘회생 묘약’을 바탕으로 화합의 전진 이뤄야
한국 축구 A대표팀이 우렁찬 기지개를 켰다. 2026 북중미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에서, 겨울잠을 떨쳐 내고 장밋빛 봄을 맞이했다. 오랜만에 낙승(3-0)을 구가하며 아시아 3차(최종) 예선 진출 티켓을 사실상 손안에 움켜쥐었다.
올 1~2월 열린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충격을 다소나마 누그러뜨리는 완승이었다. 고전을 거듭하며 근근이 올라가 밟았던 4강 마당에서, ‘요르단전 참패(0-2)’의 돌풍에 휩싸였던 쓰라린 기억이 여전히 잊히지 않는 시기에 올린 개가였다.
3골 차 승리도 4개월 만에 나왔을 만큼, 2024년 들어 깊은 침체의 골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 A대표팀이었다. 지난해 마지막 A매치 무대였던 2026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중국전(11월 21일·선전)에서, 마지막으로 3골 차 완승(3-0)을 맛본 A대표팀이다.
그뿐이랴. 64년 만에 불태운 아시안컵 정상 도전이 허무하게 좌절되며 빚어진 ‘클린스만 파고’와 ‘탁구 게이트’마저 터져 나오며, A대표팀은 와해의 위기에 맞닥뜨리기도 했다. 핵심 선수 간의 갈등은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의 열망을 잠재울 냉풍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았다. 원정 태국전 닷새 전에 서울에서 벌어진 홈 태국전의 실망스런 결과(1-1 무)는 그런 근심이 단순한 기우(杞憂)가 아님을 보여 주는 듯싶기까지 했다.
다행히 기우로 끝났다. 까다로운 상대인 태국을 비교적 쉽게 요리했다. 아시아 축구가 상향 평준화한 21세기 들어와, 한국이 태국을 이처럼 몰아붙인 한판은 볼 수 없었다. 물론, 주된 맞상대였던 1960~1990년대에 비해 금세기엔 좀처럼 맞붙을 기회가 없었던 데서 비롯한 현상이지만 말이다. 2016년 3월에 방콕 수파찰라사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친선 A매치가 21세기 태국과 벌인 최초의 한판이었을 정도다. 울리 슈틸리케 체제였던 당시, A대표팀은 석현준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한 바 있다. 한국이 태국을 세 골 차 이상 물리쳤던 마지막 한판은 1983 대통령배 국제 대회(4-0 승)였다.
2026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태국전 승리가 남다른 점은 경기가 펼쳐진 무대에서도 찾을 수 있다. A대표팀이 일신의 계기 창출을 갈망하며 찾아간 라차망갈라 스타디움은 ‘악연의 땅’이었다. 잊기 힘든 뼈저린 태국전 패배의 망령이 떠나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태국이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주경기장으로 신축한 국립 경기장인 그곳에서, 한국은 도저히 들이켜기 힘든 고배를 마셨다.
8강전이었다. 그리고 역시 상대는 태국이었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A대표팀은 파이널 라운드 첫 관문에서, 어이없이 무너졌다. 일방적 경기를 펼치고도 연장전 전반 5분 골든골을 내주고 1-2로 졌다. 두 명씩이나 레드 카드를 받고 9명으로 버틴 태국에 승리를 헌납(?)한 꼴이었다.
어쩌면 오락가락한 불안한 전력을 드러냈던 ‘허정무호’의 좌초는 예견됐는지 모른다. 1차 조별 라운드 첫판에서, 투르크메니스탄에 2-3으로 역전패하며 출발이 좋지 않았다. 한데 조 2위로 올라간 2차 라운드에서, 완전히 달라졌다. 일본(2-0)→ 아랍에미리트(2-1)→ 쿠웨이트(1-0)를 잇달아 꺾고 3연승을 내달리며 12년 만의 금메달 결실이 여무는 듯했다. 그 금빛 희망의 빛이 갑작스레 사라진 곳이 라차망갈라 스타디움이었다.
사실, 이 악몽은 4년 만에 재현됐다고 할 수 있다. 아시안 게임에서, 이란(4개)을 제치고 최다(6개) 금메달을 수확한 한국(표 참조)엔, 가혹했던 1990년대였다. 1994 히로시마(廣島) 대회와 1998 방콕 대회에서 잇달아 생각하지 못했던 좌절을 겪었다.
1994 아시안 게임에서도, 한국은 굉장히 엇비슷한 꿈을 꾼 바 있다. 단지, 상대와 뛰논 마당이 달랐을 뿐이다. 상대는 우즈베키스탄이었고, 마당은 4강전이었다.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 체제로 나선 금메달 도전 여정은 노 메달(4위)로 끝났다. 결승전 문턱에서 만난 우즈베키스탄에 0-1로 졌다. 슈팅수 27-4가 말해 주듯, 압도적 공세를 퍼붓고도 결승행 티켓을 따내지 못했다. “축구는 골로 말한다”라는 축구계 속설은 ‘진리’였다.
“흥망은 되풀이된다. 화와 복, 기쁨과 슬픔은 갈마들기 마련이다.” 세상사를 살아가는 데 있어 뿌리칠 수 없는 참 명제다. 태국전을 디딤돌로, 한국 축구는 고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 늘 깨어 있으려는 마음가짐을 밑거름으로 한마음 한뜻을 이뤄 앞으로 나아가야 할 한국 축구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