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대가리 박고 보자.
서울월드컵경기장은 킥오프가 3시간 넘게 남은 4시 30분 무렵부터 팬들로 북적였다. 지난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많은 논란을 낳은 대표팀이지만, 인기는 여전했다. 대한축구협회(KFA)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보이콧이 논의되기도 했으나 붉은악마는 선수들에게 응원을 보내기로 택했다. 여느 때처럼 이번 태국전 티켓도 일찌감치 매진됐다.
아시안컵 이후 대표팀은 여러 가지 이슈에 시달렸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자격 논란을 시작으로 대한축구협회(KFA)의 여러 가지 운영 미숙 등으로 인해 논란이 멈추지 않았다. 여기에 대표팀의 핵심인 손흥민과 이강인의 충돌이 알려지면서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번 3월 A매치를 앞두고 KFA는 황선홍 올림픽 대표팀 감독의 임시 사령탑으로 임명하고 손흥민과 이강인이 알아서 사과하면서 사태 수습에 나섰다. 여러 가지 비판 목소리가 이어졌기에 새로운 체제에서 어떻게든 승리가 절실했다. 그렇기에 이 경기서 한국은 최상의 라인업으로 나섰다.
하지만 황선홍 첫 체제로 나선 대표팀은 아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아시안컵에서 보여준 답답한 경기력이 이어지면서 태국 상대로도 고전했다. 전반 시작 직후 한국은 태국의 강한 압박에 오히려 고전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전반 15분 조현우의 선방이 아니였다면 선제골을 허용할 정도였다. 한국은 전반 42분 주장 손흥민의 선제골로 앞서 나갔지만, 후반 16분 수파낫 무에안타에게 실점을 내주면서 1-1 무승부에 그쳤다. 경기 마지막까지 적극적으로 공격했던 한국은 끝내 골문을 열지 못했다.
누가 봐도 아쉬운 결과였다. 이날 경기 시작 전 상암을 가득 채운 한국 팬들은 선수들을 향해서는 야유 대신 응원을 보냈다. 특히 경기 시작 전부터 한국 팬들은 선수들에게 "대가리 박고 뛰어라, 응원은 우리가 한다"라고 변함 없는 지지를 약속했다.
경기가 끝나고 인터뷰에 나선 선수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해당 걸개에 나온 것처럼 더 열심히 뛰겠다고 다짐했다. 대표팀 주장 손흥민, 늦깍이 신인 주민규 모두 한 목소리로 '대가리' 박고 뛰겠다고 팬들과 약속에 대해 강조했다.
팬들이 걸개로 내건 '대가리 박고 뛰어라'란 말을 가장 먼저 한 것은 김민재다. 그는 대표팀의 소동과 분위기 등에 대한 질문을 받고 "선수들이 잘해야 한다. 그냥 분위기고 뭐고 '대가리 박고' 열심히 해야 한다"라고 말해 팬들을 감동시켰다.
선제골을 넣고 맹활약한 손흥민은 믹스트존에서 "결과가 상당히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짧은 시간 동안 선수들이 노력해서 긍정적 부분도 많이 나왔다. 결과는 저희가 조금 더 잘 준비해서 만들어내야 할 것 같다"라고 입을 열었다.
손흥민은 "선수들이 단합해서 한 발 더 뛰어주려고 노력했고, 공격하면서 찬스를 많이 만들어냈다. 분명히 긍정적인 부분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렇게 수비는 팀을 상대로 찬스를 만들어내기는 분명 어렵다. 항상 생각하는 숙제"라고 경기 총평을 내렸다.
한편 손흥민은 아시안컵 직후 여러 가지 이슈로 인해 대표팀 은퇴도 고민했으나 다시 뛰기로 다짐했다. 그는 "내가 이렇게 약한 생각을 다시는 안 할 수 있도록 더 강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몸이 되는 한, 대표팀이 나를 필요로 하는 한 (김)민재가 얘기한 것처럼 대가리 박고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박)지성이 형도 있고, (기)성용이 형도 있다. (차)두리 쌤과도 얘기를 많이 했다"라면서 "축구 외적으로도 인생 선배분들에게 질문을 많이 했다. 아버지께도 여쭤봤다. 도움이 되는 분들께 조언을 많이 구했다. 이 자리를 통해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고 덧붙였다.
늦깍이 신인으로 최고령 데뷔전을 가진 주민규도 '대가리' 정신을 강조했다. 그는 태국전서 만 33세 333일의 나이로 대표팀에 승선한, '최고령 늦깎이 대표팀 승선' 기록을 가진데다가 최고령 데뷔전을 가지기도 했다. 주민규는 제주 유나이티드와 울산HD 등에서 활약하며 K리그를 대표하는 공격수로 이름 날렸지만, 유독 대표팀과 연이 없었다.
주민규는 선발로 나서서 약 64분 동안 그라운드를 누볐다. 슈팅은 1회에 그쳤지만, 특유의 힘과 연계 능력을 뽐냈다. 상대 수비수들 사이에서 힘으로 버텨내면서 동료들에게 패스를 연결했다. 그가 기록한 7번의 패스 모두 동료의 발밑으로 향하면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대표팀의 꿈을 이룬 주민규는 대표팀 데뷔골을 노리면서 "아무래도 내가 공격수다 보니 다음 목표는 골이다. 태국이 예전보다 확실히 발전했다. 다음 경기도 이야기한 것처럼 '대가리' 박고 열심히 하는 것 말고 없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민재로 시작되서 팬들이 걸개로 걸고 손흥민과 주민규가 외친 '대가리 박고' 정신. 한국은 오는 26일 방콕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태국과 리턴매치를 치른다. 7만명을 수용하는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이 매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태국팬들의 엄청난 열기와 30도가 넘는 더위와도 싸워야 한다. 아직 한국 축구 위기의 불씨가 꺼지지 않은 상황이다. 김민재, 팬, 손흥민, 주민규가 한 목소리로 '대가리 박고'를 외치면서 총력전으로 나서 이 위기를 넘어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mcadoo@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