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승수는 ‘1’이다.”(울산 HD) “우승해 달라. 그렇지 않으면 1승도 올리지 마라.”(전북 현대)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고 해야 할까, 오월동주(吳越同舟)라고 해야 할까? K리그를 대표하는 두 명가(名家) 울산과 전북의 꿈은 같은 듯 또 다른 듯 미묘한 모양새다. 1925 FIFA(국제축구연맹) 문디알 데 클루베스 티켓을 놓고 빚어진 형세다.
‘범현대가 양웅’인 전북과 울산은 저마다 내년에 펼쳐질 본선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출전권을 갈망한다. K리그를 대표해 더 원대한 야망을 불사를 수 있는 천하로 나갈 ‘자격권’ 아니겠는가. 아울러 내로라하는 세계 명문 클럽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티켓이니 놓칠 생각이 전혀 없다. 기필코 손안에 움켜쥐려 한다.
“새로운 형태로 출범하는 문디알 데 클루베스 FIFA 2025는 각 대륙 연맹 산하 클럽이 빛날 수 있는 이정표가 될 한마당이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의 이 같은 장담처럼, 문디알 데 클루베스는 세계 클럽 축구의 신지평을 열 대회로 기대된다. 기존의 FIFA 클럽 월드컵이 확대·개편된 무대로서, 진정한 세계 클럽 지존을 가릴 첫 마당이다. 능히, 평천하를 꿈꾸는 전 세계 뭇 강호들의 사자후가 토해질 전장으로 전망된다.
의욕에 넘쳐 획기적 대회를 새로 마련한 FIFA는 이 같은 창설 취지에 맞춰 문호를 대폭 넓혔다. 각 대륙 연맹 우승 팀만이 출전해 세계 최강을 다투던 FIFA 클럽 월드컵을 일신해 출전 팀을 7개에서 물경 32개로 크게 늘렸다. 최근 4년간 각 대륙 연맹 클럽 선수권대회 우승 팀을 비롯해 4년 통산 성적에 바탕을 둔 최상위 팀이 출전권을 획득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AFC(아시아축구연맹)에 배정된 티켓은 모두 4장이다. 종전 클럽 월드컵 때 1장에서 네 배가 늘어났다. AFC는 이 4장을 FIFA의 배분안에 맞춰 안배했다. AFC 챔피언스리그(ACL) 우승(2021시즌, 2022시즌) 팀에 3장, 4년 통산 성적 최상위 팀에 1장으로 각각 할당했다.
AFC에선, 이미 2개 팀이 출전권을 차지했다. 2021시즌 패권을 안은 알힐랄 SFC(사우디아라비아)와 2022시즌 정상에 오른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일본)가 각각 한 장씩을 선점했다. ACL이 2022시즌을 끝으로 춘추제에서 추춘제로 바뀜에 따라, 챔피언에게 주어지는 남은 한 장의 티켓은 2023-2024시즌에서 우승한 클럽에 돌아간다.
이로써 남은 1장의 티켓을 누가 차지할지, 그 향방에 시선이 잔뜩 쏠린다. 비록 우승하지 못하더라도 통산 성적에 따라 본선 마당을 밟을 수 있는 마지막 1장의 출전권이기 때문이다.
막다른 벼랑에 몰린 전북, 느긋한 울산의 행보를 지켜볼 수밖에 없어
ACL 패권을 다툴 4강이 가려진 현재, K리그는 1장의 티켓은 확보했다. 아시아 프로축구의 기수라 자부하는 K리그로서 마땅히 출전 클럽을 배출해야 하는 당위성은 충족했다.
그런데 고무적 현상이라 해야 할까? 4강전과 결승전이 어떻게 펼쳐지느냐에 따라, K리그가 2장의 티켓을 따낼 가능성이 나타난 데에서 비롯한 상황이다. 그리고 덩달아 울산과 전북이 야릇한 심정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됐다.
전북이 훨씬 복잡다기한 감정이다. 울산이 실마리를 쥠으로써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다. 곧, 스스로 힘으로선 본선 자격권을 확보할 수 없는 곤궁한 처지다. 이 맥락에서, 전북은 2023-2024시즌 ACL 4강에 오른 울산을 전적으로 응원하기도 또 탈락을 학수고대하기도 애매한 상황에 맞닥뜨렸다.
같은 K리그에 몸담은 처지에선, 전북이 가장 원하는 꿈은 울산의 우승이지 않을까 싶다. 이 상황이 도래하면, 전북은 4년 통산 성적 최상위 클럽 자격으로 본선 마당에 나갈 수 있다. ACL 이번 시즌 4강 가운데, 역대 우승 클럽으로 본선 무대에 오를 알힐랄 SFC(사우디아라비아 프로페셔널리그)와 울산을 제외하면 전북이 남은 요코하마 F. 마리노스(일본 J리그)와 알아인(UAE 아라비안 걸프리그)을 4년 통산 성적에서 압도하기 때문이다(표 참조).
현재 4년 통산 성적에선, 알힐랄이 압도적 1위(115점)다. ACL 이번 시즌이 어떻게 마무리되는냐에 상관없이 선두일 만큼 넉넉히 점수를 쌓았다. 그렇긴 해도 알힐랄은 이미 우승 클럽으로서 본선 출전권을 확보했다. 이 경우에, FIFA는 차상위 클럽이 티켓을 승계하도록 했다.
전북이 가장 꺼릴 상황은 울산이 4강에서 탈락하면서 1승이라도 올리는 모양새다. 현재 4년 성적에서, 전북은 현대에 불과 2점 앞서 있다(80-78). 만일 현대가 자웅을 겨룰 최종 결전의 장에 나가지 못하면서 행여 4강전에서 1승만 거둬도 추월당할 위기다(80-81). 건곤일척의 8강 대회전에서 맞선 울산을 물리쳤다면 본선 무대 티켓을 획득했을 전북으로선 생각하기조차 싫은 꼴이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초라한 몰골로 전락할 상황에 맞닥뜨렸다고 할 수 있다.
울산은 비교적 느긋한 심정이다. 티켓을 담보하는 필요조건으로 4강전 1승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알아인이 ACL 이번 시즌 정상에 오르더라도, 통산 성적 최상위 클럽 몫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1장의 티켓을 승계해 움켜쥐는 짜릿함을 맛볼 수 있다. 울산을 향한 ‘신의 미소’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