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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싹할 줄로만 알았더니 뭉클함을 남긴다. '항일'을 표방하진 않았지만 '친일' 잔재 만큼은 다 파버리고 싶다는 열망이 뿌리 깊이 박힌 영화 '파묘'. 장재현 감독이 두 발 딛고 사는 '우리' 땅, 그 위에 귀신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이 남긴 흔적들이라는 걸 여실히 알려주고 있다.
'파묘'(감독 장재현)가 최근 6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지난달 22일 개봉해 10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동원하더니 평일에도 기세가 끊기지 않고 있다. 이대로 '천만 영화'가 될 거라는 기대감도 나올 정도. 오컬트 장르로만 알려졌다가 '항일' 코드가 있다는 입소문을 타며 호평을 받은 여파다.
당초 영화는 오싹한 오컬트의 진수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파묘'를 만든 장재현 감독은 '검은 사제들'부터 '사바하'까지 오컬트 장르 한 우물만 파온 인물로 유명하기 때문. 배우 강동원과 김윤석을 통해 구마사제들을 주인공 삼아 퇴마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검은 사제들'부터, '사바하'에서는 가상의 사이비 종교 교주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불교 세계관까지 깊이 파고들었다. 급기야 '파묘'에서는 한국 토속 신앙인 무속신앙과 풍수지리까지 파고들었다. 정작 감독 본인은 개신교 교회 집사라고 해 실소를 자아내기도.
실제 '파묘'의 전반부는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듯 공포감을 선사한다. 특히 묘를 잘못 잡은 후손들이 줄초상을 당하는 구성에서는 어깨가 뻐근할 정도의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MZ무당' 화림(김고은 분)의 대살굿에 취해 감탄하고 있다 보면 40년 땅 팔아 살아온 풍수사 상덕(최민식 분)도 모골이 송연하게 만든 악령이 튀어나와 오싹함을 선사한다.
그러나 악령보다 더 깊이 파묻혀있던 진실이 두 번째 파묘를 통해 드러나며 분위기는 달라진다. 일제강점기 한반도 정기의 맥을 끊는 쇠말뚝이 박혔다는 소위 '쇠말뚝 음모론'에 착안된 '파묘'의 진짜 빌런이 등장하기 때문. 풍수사로서 이를 파헤치겠다는 상덕의 고집은 노골적으로 민족적이다. 그에 낯뜨거워 하면서도 함께 하는 대통령 장의사 고영근(유해진 분), '험한 것'에 당한 신아들 윤봉길(이도현 분)을 위해 나선 화림은 '묘벤저스'로 분투한다.
결국 그들이 꺼낸 것은 그 자체가 쇠말뚝이 된 일본의 악령이다. 나아가 그 것은 단지 악령이 아니며 귀신의 탈을 쓴 매국과 친일의 잔재. 감독이 연거푸 땅을 헤짚으면서 보여주고 싶던 실체다.
이 가운데 '파묘'는 오컬트 장르 외길을 걸어온 장재현 감독의 진일보를 보여주고 있다. '검은 사제들'은 구마 의식을 중심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악령과 사제들의 대결을 그렸다. 이어 '사바하'는 '그 것'과 사이비 종교 교주의 대립구도를 통해 오컬트와 현실을 접목시켰다. '파묘'는 한발 더 나아가 현실에서 있을 법한 과거 인간들의 업보가 쌓여 악령이 등장하는 오컬트로 진화했다. 귀신이나 악령 따위보다 무서운 것은 사람, 인간이 저지른 죄이며 속죄 없는 청산은 땅에 파묻혔던 관처럼 후대를 괴롭게 한다고 말해주는 듯 하다.
최근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경성크리처'와 같이 다양한 작품들이 항일 정신을 고취시키는 이야기를 선보였지만 '파묘'처럼 뜨거운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전략의 차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최후를 다룬 '노량'이나 731부대 마루타 실험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경성크리처'는 민족 정서를 전면에 앞세웠지만, '파묘'는 무덤 아래 땅 속 깊은 곳에 그 코드를 숨겼다가 파헤쳤다.
실상 청산하지 못한 친일 잔재들은 그렇게 현실 속 도처에 깔려있다. '파묘'의 시작도 미국 LA, 거액의 의뢰를 받은 무당 화림과 봉길이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집안의 장손을 만나면서 부터다. 집안의 가장 박지용(김재철 분)을 만나러 가는 길, 화림과 봉길에게 극 중 회계사(박지일 분)는 "원래부터 부자인 사람"이라고 칭한다. 나라를 팔아 축적한 부가 '원래부터'로 포장된 꼴이다. 그렇게 포장된 어떤 잔재들이 우리가 사는 현실에도 도처에 깔려 있을 터. '파묘'가 파헤친 건 그 꼴사나운 뿌리 없는 부의 근본, 그걸 덮어놓고 잊고 사는 현실이 아닐까. / monamie@osen.co.kr
[사진] 영화 포스터 및 스틸 쇼박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