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재동 객원기자] 지금 생각해 보면 매일매일이 기적이었다. 별처럼 초롱한 눈빛이 언제나 올려다 보고 있었다. 하늘의 별이 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수시로 귓가를 간질여 주었었다. 폭신하고 보드라운 그 볼에 손가락을 미끄러트릴 때, 그리고 품에 쏙 안았을 때 따뜻하게 콩닥이는 심장고동은 또 얼마나 큰 안도를 주었던가.
그러니까 이 아이가 내 아이 건우(이준 분)다. 지금은 평면의 사진에 갇혀 어떤 굴곡도, 어떤 폭신함도, 어떤 온기도 전해 주지 못하고 있는, 다만 웃음만이 눈부실 뿐인 이 아이가 내 아이다.
MBC 금토드라마 ‘원더풀 월드’(극본 김지은, 연출 이승영·정상희)는 아이 잃은 엄마의 이야기다. 그녀가 잘나가는 심리학 교수건, 한국인 최초의 로잘린 문학상 수상자건, 그래서 연예인만큼 팬층이 두터운 셀럽이건 상관없다. 그녀 은수현(김남주 분)은 생명보다 귀한 아들을 잃은 엄마일 뿐이었다.
건설사 대표라는 범인 권지웅(오만석 분)은 아이를 치어놓고 유기한 채 도주했다. 의사 소견으론 제때 병원에 도달만 했어도 생명은 건질 수 있었단다. 그러니 명백히 놈은 살인자다. 그런 놈에 대해 판사는 말했다.
“기소된 공소사실 중 도로교통법 위반의 점 및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 위반의 점에 대해선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여 무죄를 선고한다. 특정범죄가중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도주 치사의 혐의에 관해 살펴보건데 목격자 진술 등 여러 증거를 종합하면 피고인의 혐의는 인정된다. 양형에 관하여 보건데 이 사건으로 피해자가 사망하는 등 사안이 가볍다고 할 수 없으나 다만 피고인이 범행을 모두 자백하면서 뉘우치고 있는 점. 당시 사고 충격으로 당황하여 우발적으로 본건 범행에 이른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피고인을 징역 2년6월에 처한다. 다만 판결 확정일로부터 4년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피고인에 대해선 이토록 배려심 충만한 판사는 그러나 내 아이의 웃음이 줄 꾸준한 행복과 위안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하늘의 별이 되고 싶었던 내 아이의 꿈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엄마 손 절대로 놓지 않고 하늘을 날게 해주겠다던 내 아이의 상냥한 마음에 대해 침묵했다. 온 몸이 부서진 채 길바닥에 버려져 엄마를 찾았을 내 아들의 고통을 외면했다. 제게 닥친 고통의 이유도 모른 채 그 여린 숨이 끊어지도록 얼마나 아팠을까.
그런 내 아이의 죽음을 범인은 조롱했다. “니 새끼 때문에 다 된 게 삥꾸난 게 몇 갠줄 알어? 와 죽을라먼 다른 데 가서 죽지 왜 하필 내 차에 뒤지냐고!” 내 귀한, 소중한 아이는 저 인간같지 않은 놈의 손에 죽었다. 그래선 안되는 거다. 저 더러운 입이 언감생신 내 아이의 죽음을 모욕해선 안되는 거다. 그래서 놈을 내 아이와 똑같이 차로 치어 죽였다.
수감 중엔 남편 강수호(김강우 분)의 면회를 거부했다. 아이를 하늘로 보내놓고 우리끼리 가족입네 하기는 너무 미안하고 너무 염치없지 않은가. 그렇게 우리 죄가 아닌데도 우리 가족은 해체돼야 했다.
남편에겐 옥중에서 이별을 고했고 남편은 특파원으로 한국을 떴다. 만기 출소 날 잠깐 남편의 마중을 기대했던 제 마음이 하찮고 부질없이 느껴졌다.
7년 만에 찾은 아들의 무덤에서 잔디에 기대 아들의 온기를 찾던 중 비가 왔다. 누군가 우산을 드리워준다. 권선율(차은우 분)이다. 비켜 내려가는 길까지 쫓아와 우산을 쥐어준다. 어느사이 묘비명을 봤는지 말한다. “건우가 보면 마음 아플 것 같아서...” 안 받을 수 없는 우산이 안 만날 수 없는 운명임을 예고하는 듯 빗속의 두 사람이 그렇게 멈춘 채 2일 2화가 막을 내렸다..
출소한 은수현은 해결해야 할 부탁이 있다. 교도소에서 맺은 인연 장형자(강애심 분). 형 집행 중 지병으로 사망한 장형자는 수현에게 참회록을 남겼다. 남편의 불륜에 분노한 장형자는 불륜남녀가 묵었던 펜션에 방화했고 그 피해는 엉뚱한 일가족에게 닥쳤다. 당시 홀로 살아남은 8살 아이에게 형자는 수감내내 일기 형식의 참회록을 써왔던 것이다. 그 아이가 권선율일 것이고 그 참회록을 인연으로 두 사람의 인생이 꼬여갈 모양이다.
건우가 죽은 당일의 집 대문에도 복선이 깔렸다. 아들을 잃고 아내는 교도소에 보낸 남편 강수호는 해당사건의 범인 권지웅과 권지웅 변호인, 그리고 담당 판사까지가 전 서울시장이며 한국연합당 대표인 국회의원 김준(박혁권 분)과 공통분모가 있음을 확인한다.
김준은 직장까지 팽개치고 자신의 뒤를 추적해오는 수호에게 선물이라며 사건 당일 수호 집 대문을 비춘 CCTV 화면을 전달한다. 그리고 경악하는 수호.
재판 당시 권지웅의 변호사는 건우가 아프단 소식에 해외미팅을 취소하고 부랴부랴 귀가했던 은수현을 상대로 대문을 분명히 닫았는 지를 추궁했었다. 작은 키의 건우로선 어른의 도움없이 대문을 열 수 없는 구조였다. 변호인은 보호의무 소홀을 추궁할 의도였고 수현은 긴가민가한 채 증언을 못했었다. 하지만 교도소내 재봉틀 사고로 병원에 입원 중 은수현은 그날을 기억했다. 당시 자신은 분명 문을 닫았었다.
은수현의 기억과 CCTV 화면에 놀라는 강수호. 그날 건우가 집을 벗어나 끝내 사고를 당하고만 사연은 과연 무엇일까? 김준 손에 쥐어진 강수호의 약점은 무엇이고? 남주 권선율마저 김준의 해결사 노릇을 하는 모양이니. 주요 등장인물들의 관계도는 마련됐다.
과연 김남주, 차은우, 김강우, 박혁권 등이 꾸려갈 ‘원더풀 월드’는 어떤 세상이 될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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