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 게이트’의 탈출구는 ‘핑퐁’뿐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고심 끝에 찾은 묘방이라고 하기엔, 영 뒷맛이 씁쓸하다. 구태여 핑퐁식 처방전을 제시하려 했다면, 약재로는 ‘스매싱’이 필요했다. 단순히 공을 넘기는 데 급급한 처방으로는 다스릴 수 없는 환부였다.
지난 16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KFA) 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클린스만 감독 해임을 공식 발표했다. 이날 열린 긴급 임원 회의가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 건의(15일)를 받아들여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경질키로 뜻을 모은 데 따른 표명이었다.
전 국민으로 비화한 클린스만 해임 여론을 뒤늦게나마 수용한 당연한 수순이었다. 2023 카타르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에서 터진 ‘요르단전 참사’를 초래한 원천적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었던 사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 곪았던 또 하나의 환부는 여전히 깊숙이 남아 있다. 준결승 요르단전(6일·이하 현지 시각) 하루 전에 일어난 선수단 갈등, 이른바 탁구 게이트에 대해선 명쾌한 처방전을 제시하지 않았다. 곪은 부위를 도려내야 할 텐데 기껏 겉에 약을 바르는 데 그쳤다. 결국, 요르단전에서 볼 수 있었듯이 팀 응집력이 와해해 어처구니없는 경기력으로 나타난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는데도 말이다.
정 회장이 택한 한 수는 ‘공 넘기기’였다. 생각하기조차 싫은 이번 아시안컵 참변을 부른 클린스만 감독을 독단으로 사령탑에 앉힌 원죄를 짊어진, 그리고 KFA를 이끌어 가는 수장으로서 또 다른 결단이 필요했으나, 단순한 도포(塗布)에 불과한 치료법을 내놓았다.
“갈등을 표출하고 파문을 일으킨 선수들에 대한 제재는 국가대표롤 선발하지 않는 방안밖에 없는 듯하다. 새로 국가대표팀을 맡을 감독과 상의해 뽑을지 배제할지를 결정하려 한다.”
공을 넘기는 데 급급해하지 말고 스매시로 사태를 가라앉혀야 할 때
정 회장의 이 같은 말은 얼핏 타당성을 갖춘 듯 보인다. 이번 파문에 관련된 선수들이 해외 클럽에서 활약하고 있는 데서 그래도 실효성을 담보한 징계는 국가대표팀 발탁 배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곧, 밝힌 견해 중 전반부에만 해당한다. 후반부는 악역을 맡지 않겠다는 속내를 ‘협의’로 포장해 감추려 한 듯싶은 말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시안컵 저주’에 걸린 한국 축구는 지금 상당한 갈림길에 서 있다. 한 걸음만 잘못 내디뎌도 돌이키기 힘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고비에 처했다. 당장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2026 북중미 3개국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태국과 2연전(3월 21·26일)은 그 시금석이 될 전장이다.
이 상황에서, 새로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나가야 할 감독에게 – 일시적 사령탑 여부를 떠나 – 부담감부터 떠안긴 처방이다. 전장에 나가며 전략 수립에 골몰해야 할 장수에게 병졸로 쓸지 말지 골머리를 썩이게 하는, 치료약 제공이 아닌 아픔을 가중하는 극약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번 ‘탁구 게이트’는 단순한 촌극으로 덮고 넘어가기엔, 도가 지나쳤다. 공공연하게 알려졌던 갈등이 촉발하며 하극상으로까지 점화했다. 어떤 형태로든 징계 여부에 관한 생각을 밝히고 그에 따라 실행에 옮기는 결단을 밟았어야 할 정 회장과 KFA였다.
물론, 가장 강한 병졸로 전력을 구축하려 함은 모든 장수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그러나 한마음 한뜻으로 한 팀을 이루지 못하면 사상누각일 뿐이다. 11명이 하나의 팀을 이뤄 승패를 다투는 축구에선, 특히 하나로 뭉친 결속이 승리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임에 분명하다. 요르단전에서,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축구의 진실’이었다. 한국 축구 사상 최고 전력을 쌓았다는 카타르 아시안컵 국가대표팀에서 드러난 뼈아픈 경험 아니었던가.
정 회장의 생각대로 진행된다면, 한국 축구의 반전이라는 중책을 짊어지고 새로 국가대표팀을 지휘할 사령탑은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세계가 인정하는 능력을 갖춘 선수들을 뽑고 싶은 유혹이 얼마나 강할지 충분히 느껴진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론, 국가대표 배제를 주장하는 여론이 상당히 강력한 층을 이룬 사실 앞에서 주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런 개연성을 정 회장과 KFA가 사전에 없애야 한다. 한국 축구의 백년대계를 위한 긴 안목에서라도 한 번쯤은 거쳐야 할 시련이다. 도려낼 부분이 있으면 하루라도 빨리 집도에 들어가야 한다. ‘감독과 선상의 후발탁 또는 배제’라는 의견 표명이 딜레마에 빠지기 싫어서 궁구해 낸, 공을 넘기는 데 겁겁한 한 수가 아니길 바란다.
축구국가대표팀 운영규정 제17조(징계 및 결격 사유)는 뚜렷하게 밝히고 있다. “고의로 대표팀의 명예를 훼손한 자(3항 1호)”는 “징계 대상으로 상정한다”(3항)라고 명시했다. 이례적으로, 파문이 터져 나왔을 때, 그날 재빨리 이를 인정한 KFA였다. “요르단전 참사를 진화하려는 술책이었다”라는 일각의 시선을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바삐 결단의 처방전을 내놓아야 한다.
더욱이 정 회장은 클린스만 감독 사태에 있어서 ‘원죄’가 있다. 갖춰져 있던 시스템에 따르지 않고 독단적으로 영입을 강행하는 파행적 처사로, 오늘날 한국 축구가 늪에 빠지는 위기를 불렀다. 지금이라도 ‘결자해지(結者解之)’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 수비에만 치중하는 공 넘기가 아닌, 강력한 스매시로 승패를 갈라야 할 시점이다. 새 감독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고 자신이 맺은 풀을 스스로 풀겠다는 마음가짐을 펼쳐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