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재동 객원기자] “내게는 역심이 곧 충심이다.”
9일 방송된 tvN 토일드라마 '세작, 매혹된 자들'의 이인(조정석 분)이 기대령 강희수(신세경 분)를 의심하는 주상화(강홍석)에게 한 말이다.
이날 주상화는 “전하께 역심을 품고 있다면 어찌하실 생각이냐”고 물었고 이인은 “그렇다면 더욱더 지켜줘야지.”하며 이같이 덧붙였다.
이 대사 하나에서 드러나듯 이인은 역설적 인간이다. 생략도 많고 건너뛰기도 일쑤라서 연속성과 개연성을 찾아내기 힘들다. 그를 연모했던 강희수로서는 그 속내를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다.
애초에 희수가 알던 진한대군은 희수를 겨냥한 칼을 맞고도 제가 맞아 다행이라던 인물이었다. 바람 냄새를 맡으며 감탄하던 이이기도 했다. 심양서 맡던 바람엔 조선 백성의 피와 땀 눈물이 배어있었다며 죽는 날까지 이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살아 다시는 그런 참혹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기도 했었다.
그렇게 기개있던 그가 몽우란 이름을 지어줬을 때, 그리고 다정한 음색으로 망형지우라 불러줬을 때 희수는 기뻤다. 김종배(조성하 분)의 손에 떨어져 추국장에 끌려갔을 때는 “내 반드시 널 구하러 돌아오겠노라”고 다짐하고 길을 나서기도 했었다.
그를 다시 보았을 땐 임금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는 “역적과 손을 잡고 거짓 고변으로 종묘와 사직을 위태롭게 한 죄 심히 무겁고 중하다.”면서 엄벌을 명했다. 이해불가의 순간이었다. 아득한 정신줄을 붙잡고 홍장(한동희 분)이라도 살리려 망형지우로서 부탁했을 때조차 “과인은 이제 필부가 아니다. 이 나라의 임금이다. 임금에겐 신하와 정적만 있을 뿐 친구는 없다.”고 뿌리쳤었다. 그렇게 이인은 조작된 증거를 앞세워 번연한 진실을 외면했고 희수는 함부로 버려졌다. 이유도 죄도 없이 치욕 속에 떨어졌다.
그렇게 희수 가슴에 곱게 쌓아올렸던 연모의 정은 금가고 갈라지고 끝내는 무너져내렸다. 그 자리엔 대신 켜켜이 증오의 탑이 쌓인 줄 알았다.
하지만 기대령에 응시했을 때 ‘주상전하 납시오.’란 한 마디에 설렌 가슴은 무엇이란 말인가. 다행히 3년만의 재회에서 이인은 희수의 복수심을 거론하며 혀를 뽑네 목을 치네 을러댔었다. 이런 남자를 상대로 무슨 근거로 대책없는 연정을 쌓았던가하는 자책은 다시 한번 희수의 전의를 북돋웠었다.
이후로도 이인은 부러 딴청 피우며 이리저리 희수의 심사를 농락했다. 덕분에 궁에서의 한 보 한 보는 반상 위의 한 수 한 수처럼 살얼음판 같았다.
하지만 이 남자 이인은 여전히 알 수가 없다. 왕대비 박씨(장영남 분)의 관리하에 숨만 쉬며 살고 있던 문성대군의 숨통을 틔워준다. 바둑을 두고 싶다니 희수에게 가르치라 명하고 선대왕의 기신제에 동참하겠다니 그조차 들어줬다. 역모의 불씨가 되기 십상인 문성대군(홍준우 분)에 대한 정체 모를 호의가 느껴진다.
기신제에선 또 어떤가? 유현보(양경원 분)의 사주를 받은 무사와의 대결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은 희수를 손수 뛰어들어 구해주는가 하면 부상당한 희수에게 자신의 침소를 내어주며 치료를 독촉하기도 한다.
그 능행길에 몽우가 내렸다. 몽우 속으로 내려선 희수가 추억으로 글썽여지는 눈시울을 거북해한 순간 나타나서는 “나는 몽우 네가 좋다.”며 뜬금없는 고백도 던져온다.
어떤 변명도 하찮은 배신자가 이인이다. 하지만 언뜻언뜻 그의 이기적인 선택에서 자비가 느껴지고 서슬퍼런 적의에서 온건함이 찾아진다. 사랑이란 이름으로는 이해도, 용서도 못할 그의 미천한 심사가 문득문득 거룩하게 다가오는 건 왜인가?
때로 연모의 촛불은 켜기보다 끄기가 더 어려울 수 있다. 희수가 깨닫게 될 바인 듯 싶다.
/zaitung@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