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작가 "느린 호흡? 드라마 길이보다 중요한 건 '재미'" [인터뷰④]
OSEN 연휘선 기자
발행 2023.12.11 06: 15

(인터뷰③에 이어) '연인'의 황진영 작가가 병자호란 당시 조선 포로들의 애환과 진한 로맨스를 느린 호흡으로 풀어냈던 이유를 밝혔다.
지난달 18일 종영한 MBC 드라마 '연인'(극본 황진영, 연출 김성용)은 병자호란을 겪으며 엇갈리는 연인들의 사랑과 백성들의 생명력을 다룬 휴먼 역사 멜로 작품이다. 대본을 집필한 황진영 작가는 서면으로 국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며 작품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연인'은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으로 12.9%의 자체 최고 시청률로 종영하며 큰 인기를 누렸다. 이를 통해 전하고 싶던 메시지도 있었을까. 황진영 작가는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생각을 먼저 한 적은 없었지만, 항상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는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욕심을 품었다"라고 털어놨다. 이에 "'연인'에서도 장현(남궁민 분)과 길채(안은진 분), 그리고 두 사람과 얽힌 다양한 인물들이 살아낸 이야기를 통해, 병자호란과 포로들이 다시 생생해지기를 기대했다"라며 "장현의 사랑과, 길채로 대표되는 포로들의 생의 의지가 감동도 주고 재미도 주기를 바랐다. 그 재미와 감동으로 마음이 포근해졌다면 '연인'의 목적은 넘치게 달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황진영 작가는 "포로들이 노동요를 부르는 씬이 벅차도록 좋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더 오래 보고 싶어 아쉬운 기분이 들 정도"라고 너스레를 떨며 "너른 들판, 정다운 노동요, 백성들의 얼굴에 핀 미소, 조선 사람들이 농사일만은 천하제일이라며 삐죽 으쓱대던 정명수, 그리고 다시 백성들의 미소. 찍기 어려운 씬을 던져놓고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쫓기는 환경에서 아름답고 벅찬 씬을 만들어주셔서 감동적이었다"라고 회상했다. 
나아가 "이 장면을 보고 나니, 마지막 포로들이 국경을 넘어와 감격적으로 해후하는 장면이 후반 제작 여건상 제대로 찍히지 못해 더욱더 아쉬워졌다. 수백여 포로들이 서로 왈칵 부등켜 안고, 조선땅에 당도한 기쁨과 회한을 나누는 씬이 잘 구현되었다면, 아마 가장 좋아하는 장면에 꼽혔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렇듯 작품이 로맨스부터 포로들의 애환까지 진득하게 풀어낼 수 있던 배경에는 '연인'에서 보여준 황진영 작가만의 묵직한 호흡이 매력 포인트로 꼽히기도 했다. 실제 '연인'은 극 초반부터 종영까지 서서히 등장인물들의 서사를 쌓은 작품으로 정평이 났다. 이로 인해 때로는 "늘어진다"라는 비판에 시달리기도 했으나, 반대로 묵직한 감동에 있어서는 보는 이들을 전율하게 만들었다. 연장 끝에 21회로 종영한 편수부터 파트제 구성, 100분 특집 편성의 활용까지 '연인'은 실제로도 결코 짧지 않은 작품이었다. 그마저도 종영에 이르러서는 드라마 팬들에게 "더 보고 싶다"는 기분 좋은 원성을 듣기도 했다.
황진영 작가는 이와 관련 "드라마를 쓸 때 조급해지지 말자고 항상 다짐한다.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쌓아야 할 것들은 쌓고, 유예시켜야 할 감정들은 유예시켜야 진짜 격정과 분노와 기쁨이 터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나 '연인'은 더욱더 그런 과정이 필요했다"라며 "병자호란은 실패한 전쟁이었기에, 그 어두움을 밝히기 위해서는 밝게 시작해서 격정에 다다르는 장현과 길채의 사랑이 필요했고, 우리 장현과 길채는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연인이자, 병자호란을 온몸으로 겪는 그 시대 백성이어야 했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더불어 "그래야, 두 사람의 사랑을 따라가며 병자호란을 이해하고, 포로들을 이해하고, 조금은 난해하거나 복잡할 수 있는 역사 이야기도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장현 길채가 짊어진 짐이 있었기에 두 사람의 사랑은 다소 느리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라면서도 "하지만 그 덕분에 두 사람의 사랑을 따라가며 시청자분들이 병자호란과 포로들에 대해서도 읽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그 시대를 충분히 묘사했기에, 시대의 아픔이 사랑의 장애물로 작용해, 애절한 감정이 증폭될 수 있었다"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길이'보다 중요한 것은 '재미'"라고 힘주어 밝히며 "길어서 재미없는 것이 아니라, 재미가 없으니 길게 느껴지는 게 아니겠나. 저 역시 재미있게 구성하지 못해서 원성을 들을 때가 많기에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지만, 사실, 전 세계를 강타한 빅히트 드라마 '왕좌의 게임'이나 '소프라노스' 같은 미국 드라마들도 시즌제로 방영했을 뿐, 백부작에 육박한다. 긴 흐름의 스토리에서는 보다 다양한 캐릭터들을 풍부하게 그릴 수 있다. 인간의 갈등을 첨예하게 다룰 수 있다. 그렇게 깊이감을 만들어 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시청자들은 '재미'를 원하지만 한편으로 드라마를 통해 '인간'을 보기를 원한다"라며 "그리고 인간은 인간을 들여다 보았을 때, 가장 큰 재미와 자극을 느낀다"라고 덧붙였다. / monamie@osen.co.kr
[사진] M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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