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재동 객원기자] “오래 전에 나는 내 딸과 아들을 모두 잃었다. 내 딸은 종과 사통했다는 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는 딸의 그 결심을 미리 알았으나 말리지 않았다. 골수를 긁어내는 고통이었으나 나와 내 딸은 합심하여 가문을 지켰고 아름다운 의리를 지켜냈다. 오랑캐에 유린당한 이 땅 조선에서 우리 선비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헌신과 희생은 과연 무엇이겠는가? 나를 미워하는 자, 내가 미워하는 자를 쳐내는 것? 그건 용기도 희생도 아니다. 진정한 희생은 더 큰 의리를 위해서 내 목숨만큼 소중한 이마저 도려내는 것, 그것이 희생이다.”
18일 방송된 MBC 금토드라마 ‘연인’ 마지막회에서 이장현(남궁민 분)의 아비 장철(문성근 분)은 제자 남연준(이학주 분)을 상대로 폐부를 쥐어짜내는듯 절절하게 토로했다. 남연준은 이장현이 장철의 아들임을 눈치챘음에도 아들마저 의리를 위해 희생시키겠다는 비장한 스승의 진심에 감복, 내수사 노비들을 이끌고 이장현 추포에 나선다.
이렇게 남연준을 감동시키긴 했지만 장철의 토로가 진심이었던 것은 아니다. 장철은 ‘사통했다는 소문’이라 각색했지만 딸과 종복 삼도가 서로 연모했음을 알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윤색했지만 얼음 강을 건너다 빠져 죽으라고 장철 본인이 강요했음도 알고 있었다. 더 큰 의리를 위해서 내 목숨만큼 소중한 이마저 도려낸다 했지만 “제자들 보는 앞에서 다시 노비로 전락해 보겠는가?”는 인조의 협박에 굴복했기 때문임 역시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장철은 남연준이 토벌의 마무리를 인조에게 보고한 날 스스로 목을 맸다. 독백으로 처리된 장철의 유언. “현아 너와 내가 합심하여 가문을 지키고 아름다운 의리를 지킨 것이다.”
딸에 이어 아들과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시켜 완성시킨 거짓말이다. 진실이 추악하여 진실이 밝혀지면 그 진실이 모든 것을 무너뜨릴까 두려웠던 것이 본심이다. 그 본심을 숨기려 ‘아름다운 의리’란 포장지를 덧씌우고 덧씌워 자기 기만마저 자기 확신으로 관철시킨 지독한 거짓말이다.
사족이지만 기축옥사, 무고, ‘다시 노비’ 등을 고려해볼 때 이장현의 조부, 장철의 아버지는 구봉 송익필을 모델로 한 모양이다.
이런 자기 기만이 자기 암시를 거쳐 자기 확신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는 장철과 인조(김종태 분)가 유사하다. 인조 역시 아들 소현은 병으로 급사했으며 며느리 강씨는 무조건 역적이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세뇌시켜 내면화했지만 강씨의 잔적 토벌에 금군이 아닌 내수사 노비를 동원함으로써 제 속의 진실을 드러냈다.
겁먹어 잔인해진 점도 동일하다. 인조는 아들을 겁낸 아비란 세평이 두려워 며느리 강빈을 기필코 역적으로 몰았다. 장철은 종복 삼도를 면천시켜 딸과 이어주려던, 연민할 줄 아는 선비였다. 하지만 그 삼도가 아비의 무고로 도륙난 집안의 마지막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겁에 질려버렸다. 그리고 끝내 복수를 포기하고 죽은 듯 살겠다는 삼도의 약조조차 믿지 못하고 장살(杖殺)하고 만다.
여기 어디에 크고도 아름다운 의리가 있는가. 다만 비겁하고 추악한 자기합리화만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당연히 편파적이다. 호불호(好不好)가 있고 친소(親疏)가 있고 나름의 가부(可否)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하나 둘 쌓여 눈을 가리고 귀를 덮는다. 진실은 그렇게 한 겹 두 겹 덮어지고 포장만 남는다. 그 포장이 스스로를 가두는 우리인지도 모른 채 그 안에서 안락을 추구한다. 그러다 싸움이 시작된다. 원한 때문이 아니다. 불안 때문이다. 저 쪽이 내 포장을 찢고 핍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주는 불안. 인조도 장철도 저를 감싸는 포장이 찢겨 진실의 알맹이가 속속들이 까발려질 것을 두려워했다.
그 위선의 속내를 이장현은 진즉 알아차렸다. 그래서 풀뿌리 같이, 돌멩이 같이 살고자 한 것이다. 빗물로 머리 감고 바람에 빗질 하더라도 마지막 순간을 살도록 정든 맘 속이지 않고 간절히 사랑하며 살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바람을 이뤘다. 오래 걸렸고 그만큼 힘들었다. 남연준이 이끄는 추포단에 맞서 싸우다 기억마저 잃었다. 길채(안은진 분)도 잊었다. 다만 저리고 아프도록 간절한 한 가지는 잊지 않았다. 누군가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 그 누군가가 원했던 자리에 멈춰 언제가 됐건 마지막 순간이 오도록 까지는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
그 단순한 기다림 끝에 한 여인이 나타났다. 사람을 찾는다 했다. 서방이라 했다. 잘생겼다고 한다. 여인은 도통 갈 생각을 않는다. 밥도 얻어 먹고 방도 차지한다. 그 여인이 묻는다 “왜 혼자 이런 곳에서 사세요?” 답했다. “기다렸지. 그 이가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 했거든.”
여인이 다시 한번 도와달라 청하면서 잘생겼다는 제 서방을 설명한다.
“제 서방님은 약속은 꼭 지키는 분이셨어요. 서방님이 제게 어찌 살고 싶으냐고 물으시니 아래로 냇물이 흐르는 곳, 꽃나무 오솔길 끝 길에 초가집을 지어 가을에 만든 머루주를 겨울에 꺼내 마시면서 함께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서방님께 꼭 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 그리고 서방님 대답도 들어야 됩니다.”하는 중에 품에서 꺼내던 반지 하나가 모래 위를 구른다.
어쩐지 익숙한 반지. 여인이 종알대도록 머릿속을 간질이던 어떤 기분이 좀 더 농밀해진다. 그리고 그 반지를 주워들도록 여인은 계속 말한다. “어쩐지 그날 꿈속 낭군님이 오실 것만 같았지요. 하여 내 앞에 모든 것이 초록으로 분홍으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눈물을 그렁이며 종알대는 여인을 향해 발이 절로 움직이고 손이 절로 그녀의 볼에 가 닿는다. 눈물에 젖은 얼굴로 여인이 말한다. “서방님, 길채가 왔어요!” 길채? 길채라고? “이제 대답해주세요. 그날 무슨 소리를 들으셨소?”
아, 나는 답을 알고 있다. “꽃소리, 분꽃 소리!” 이제 알겠다. 그랬지. 내가 기다려온 사람. 그 이가 저 여인 길채였구나. 그제서야 봇물 터지듯 확연해지는 기억. 깊고 깊은 꿈에서 깨어나듯 모든 것이 생각난다.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길채야!” “길채야!” 잊혀져 못불렀던 그 이름이 서럽게 목울대를 넘는다. “기다렸지. 그대를.. 여기서. 아주 오래.” 장현은 기다렸던 세월만큼 깊이깊이 길채를 안아본다.
그렇게 ‘연인’이 끝났다. 이장현을 연기한 남궁민은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연기 내공을 원없이 드러냈다. 특히 아비 장철과의 독대, 잃었던 기억을 되찾는 마지막 장면에서의 표정 연기는 섬세하고 세밀하게 조율돼 놀라운 흡인력을 발휘했다. 대본의 활자를 넘어선 복잡다단한 심경이 표정만으로 전달될 수 있음을 목도하는 것은 오소소한 경험이었다.
이장현-유길채의 진솔한 사랑과 사대부의 허위의식을 대비시키는 긴장감 있는 연출은 1회 연장이 부른 구성의 허술함과 개연성 부족을 넉넉하게 커버했다. 오랜만에 잘 만든 사극을 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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