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재동 객원기자] ENA 수목드라마 ‘유괴의 날’이 새로운 전기를 맞은 모양이다. 드라마의 포커스가 내내 수상했던 여자 서혜은(김신록 분)에게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5일 방송된 7회에서 서혜은은 제발로 박상윤(박성훈 분)을 찾았다. 그리곤 살해당한 최진태(전광진 분) 및 살인범 박철원(김상호 분)과 얽힌 과거사를 털어놨다.
그녀는 머플러를 풀어 목의 상처를 드러내며 말을 시작했다. “이 상처가 생긴 날부터 이야기 할까요?.. 되게 놀랐는데 울지도 못했어요. 우는 모습이 밉다고 버림 받을까 봐. 끝까지 눈물을 꾹 참았어요... 근데 상처가 다 아물고 나서도 병원에서 퇴원하지 못했어요. 거의.. 1년 정도?.. 나중에서야 알게 됐죠. 철원 아저씨가 휘두른 메스가 에이즈 환자가 썼던 거였고 그날 이후로 나는 감염됐단 사실을요. 그래도 당시 유전자 치료의 최고 권위자였던 우리 아빠가, 자신의 역량을 다 동원해서, 나를 치료해 줬어요... 치료를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날 처음 보는 애가 내 방에 있었어요. (너 누구야? 나? 박진, 아니 최진태야.)”
듣고 있던 박상윤이 물었다. “왜 입양과 파양을 반복하는 거죠?” 서혜은은 자신의 머리를 검지로 톡톡치며 미소 담아 말했다. “의학기술로, 뇌 기능을 증폭시킨다.” 박상윤이 다시 물었다. “그 실험을 입양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겁니까?” 서혜은이 답했다. “실험성과가 나오지 않는 애들은 모두 파양됐어요. 저도 마찬가지고.”
박상윤과의 이 대화 장면은 그동안 부각되지 않던 서혜은의 극중 존재감을 크게 노출시켰다. 대화를 통해 드러난 서혜은의 성격은 전혀 일반적이지 않았다.
서혜은은 최동억 박사에게 입양 후 파양된 전력을 갖고 있다. 입양 기간 중엔 본인 입으로 박상윤에게 “끔찍하다”고 말한 실험을 계속 받았고 최동억을 겨냥한 박철원의 메스를 잘못 맞아 에이즈에 걸리기도 했다. 그리고 파양됐다. ‘끔찍한 실험-에이즈 감염-파양’이란 사실관계만 보더라도 최동억은 그녀에게 원수일 수 있다.
하지만 서혜은은 그런 최동억을 “우리 아빠”라고 표현했다. 또한 자부심까지 담아 “당시 유전자 치료의 최고 권위자였던”이란 수식도 사용했다. 아울러 “자신의 역량을 다 동원해서, 나를 치료해 줬다”고 힘주어 강조하기도 했다.
마치 스톡홀름 증후군을 보는 듯 하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자신보다 큰 힘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가해자에게 심리적으로 공감하거나 연민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범죄심리학적으로는 인질이 인질범에게 동화 혹은 동조하는 비합리적인 현상을 뜻한다.
서혜은이 고교졸업 이후 박철원을 다시 만난 곳도 최동억의 빈소였다. 이 때는 에이즈 재발 통보를 받고 심적으로 무척 위태로운 상태였다. 실제로 화면 속 서혜은은 남편 김명준(윤계상 분)과 딸이랑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향해 유리잔을 던져 깨트릴 정도였다.
그럼에도 부고를 전하는 뉴스를 보고는 최동억의 빈소를 찾았다. 이유를 모르겠다면서도 “처음으로 아빠라 불렀던 사람”이란 나름의 의미를 찾아내기도 했다. 그 자리서 다시 만난 최진태 내외를 보고는 서둘러 발길을 돌렸고 그 자리서 박철원과 재회하게 됐다는 것이 서혜은의 설명이다.
그런 서혜은에게 박상윤은 김명준이 최로희(유나 분)를 살해하고 서해 바다 국경 부근에서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전한다. 서혜은은 “어머 세상에..”라 놀란 기색을 보이며 “명준이는 사람을 죽일만한 사람이 아녜요.”라고 부정한다.
박상윤이 단도직입적으로 “김명준씨의 최로희 유괴에 관여한 적 있습니까?” 물었을 때는 “아니요!”라고 천연덕스럽게 부정도 한다.
서혜은을 면담한 박상윤이 “김명준은 지금 이용당하는 중인 것 같습니다.”고 단언하는 장면과, 제이든(강영석 분)을 통해 아빠 최진태의 살해범과 서혜은이 알고 지낸 사이란 걸 알게 된 로희가 ‘도통 모르겠다’는 김명준을 향해 “어릴 때부터 알았다며! 30년 동안!”이라고 타박하는 장면도 의미심장하다.
서혜은은 확실히 최로희 유괴에 김명준을 이용했다. 김명준은 서혜은을 30년 동안 알아왔지만 사실은 그녀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다. 집 나간 3년 간의 행적까지 포함해서.
여기에 박철원는 최진태를 살해할 동기가 없다. 금품을 훔치려다 몸싸움 끝에 살해했다는 진술도 신빙성이 떨어진다. 경찰이 그의 거처를 수색했을 때 마치 사람 안 사는 집처럼 생활반응이 최소였다. 가족도 없고 본인 생활도 축소지향적인 인물이 금품 욕심을 냈다는 주장은 허구에 가깝다.
하지만 서혜은에겐 최진태 살해동기가 있다. 최진태는 어린 시절 그녀의 방을 빼앗았고, 그녀 대신 그녀의 아빠 최동억의 호적에 입적했으며, 최동억의 마지막 가는 길에도 상주자리를 꿰찬 채 ‘네가 올 자리가 아냐!’란 눈빛으로 그녀를 내몰았다. 서혜은에게 최진태는 그렇게 난생 처음 불러 본 ‘우리 아빠’를 빼앗아간 적이었다.
그러므로 서혜은은 확실히 최진태의 죽음에 연관된 듯 보인다. 자신에게 죄책감을 지닌 박철원을 가스라이팅해 살인을 교사했든 박철원을 이용해 본인이 직접 손을 썼든.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혜은 역시 로희에 앞서 뇌기능 증폭 실험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범재는 넘어서는 수준의 지능을 보유하고 있기 십상이다. 어쩌면 그 부작용으로 이상심리를 경험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한 번 본 건 절대로 잊지 않는다는 로희가 유독 그날의 기억을 되살려내지 못하는데도 서혜은이 간여한 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로희 진단 ‘또 다른 약물’을 투여한 장본인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서혜은의 미스테리함을 화면에 고스란히 살린 김신록의 연기는 일품이다. 뇌 기능 증폭 실험의 결과값이 서혜은의 경우 연기력 상승으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다.
물론 시니컬한 천재성과 때 묻지 않은 11살 소녀의 순진함을 동시해 연기한 유나와, 어설프고 착한 유괴범 김명준 역을 찰떡 소화한 윤계상을 포함, 전 출연진의 연기가 배역에 착 달라붙어 보는 재미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거나 모든 주요 배역에서 구멍 없는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유괴의 날’이 지닌 가장 큰 강점이 아닐 수 없다.
7화를 기점으로 미스테리의 핵으로 부상한 서혜은이 과연 어떤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지 ‘유괴의 날’ 다음화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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