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재동 객원기자] tvN 토일드라마 '아라문의 검'이 대전환의 시점을 맞았다. 지난 17일 방영된 4화에서 타곤(장동건 분)의 정체가 보라피의 이그트임이 만천하에 공개됐다. 시즌1인 ‘아스달 연대기’ 18화 내내, 그리고 ‘아라문의 검’ 3화까지 꼭꼭 숨겨온 피의 정체가.
그리고 아스달의 대제관 탄야(신세경 분)는 그 보랏빛 피가 200년 전 신이 된 영웅 아라문 해슬라의 전승이며 모두의 어머니 아사신의 축복임을 선언했다. 그 순간 평생의 굴레는 선택된 자의 특권이 되어버렸다.
그 소회를 아스달 최초의 왕이자 재림 아라문 해슬라로 자리매김한 타곤의 입을 빌어 유추해보자.
나 이제 내 이야기를 하려 하노라. 사람 중 가장 고귀한 자리에 선 누추하고 가련한 영혼의 이야기를.
나 고백하거니 아사신의 축복을 받고 태어난 줄 알았노라. 야만의 세상 속 유일한 문명의 땅 아스달에서, 그것도 연맹장의 아들로 태(胎)를 갈랐노라. 초원을 바람처럼 달렸노라. 세상을 작은 손아귀로 잡아챘노라. 저주받은 운명이 코 앞에 닥쳐왔음을 그때는 추호도 몰랐었노라.
아버지 산웅(김의성 분) 어라하의 손을 잡고 숲길을 걸었노라. 어느 순간 아버지의 온기는 내 손에서 사라졌노라. 어둑해진 숲길 여기저기서 사나운 짐승들의 눈 불 만이 거칠었노라. 살기 위해 달렸노라. 두려웠노라.
그리고 만난 아버지는 자그맣게 웅크린 채 울고 있었노라. 나를 잃은 아버지는 그렇게 슬퍼하고 있었노라. 그 품에 뛰어들었노라. 안도했노라. 하지만 날짐승의 발톱 같은 아버지의 손아귀가 내 목을 조여왔노라. 놀란 심장은 새처럼 파닥였노라. 머릿 속이 하얗게 변했노라. 그것이 들숨이 막혀서인지 놀람 때문인지 알 수 없었노라.
아버지의 손아귀에서 갑자기 힘이 빠졌노라. 아버지는 당황한 채 뇌까렸노라.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다. 넌 아라문 해슬라가 될 거다. 내가 그리 만들 거야.” 다시 안도가 찾아왔노라. 아버지도 나처럼 놀란 티가 역력했노라. 아버지는 다시 당부했노라. “그때까지 결코 니 피를 드러내서도, 들켜서도 안된다. 알겠느냐?” 그 때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노라.
친구와 놀던 어느 날 다쳐 피를 흘렸노라. 내 보랏빛 피를 본 친구는 놀랐노라. 그날 아버지는 친구와 친구의 부모님을 도륙했노라. 그제서야 알았노라. 내 어머니는 파란 피의 뇌안탈임을. 그리하여 내 존재는 짐승 취급 받는 이그트임을. 그리고 다른 날 내 피를 목격한 다른 친구의 머리를 내 손으로 박살냈노라. 내 첫 살인의 제물은 내 친한 동무였노라. 친구의 가족이라도 살리는 것이 친구의 도리라 여겼었노라.
기름진 달의 평원의 주인 뇌안탈들을 만났었노라. 내 어머니의 종족인 그들을. 아버지를 위시한 인간들은 제안했노라. 달의 평원이 가진 풍요를 함께 나누자고. 어리석은 뇌안탈들은 거절했노라. 거센 힘을 지닌 그들은 안타깝게도 욕망이 거세되어 있었노라.
뇌안탈들과의 협상이 결렬된 후 인간들을 전쟁을 준비했노라. 그것은 내게 또다른 위기였노라. 아버지는 내게 아스달을 떠나라고 명하였노라. 뇌안탈과의 전쟁이 시작되기 전 이그트들을 먼저 제거할 것이라고 귀띔했노라.
하지만 그것은 문명 속에 살아온 타곤에겐 죽으란 얘기였노라. 필사적으로 매달렸노라. 이그트든 뇌안탈이든 내가 다 죽일 수 있다고 매달렸노라. 다시 말하건데 나는 살아야 했노라. 문명 속에서 살아야 했노라.
내 반쪽을 흐르는 인간의 피는 집요했노라. 영악했노라. 나는 내 어머니의 종족 뇌안탈과, 내 동족 이그트들을 죽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노라. 그리고 알았노라. 인간에겐 해가 없되 짐승과 뇌안탈에겐 치명적인 병의 존재를.
성공했노라. 병 걸린 뇌안탈들은 사냥감으로 전락했노라. 인간세상은 타곤이란 이름을 찬양했노라. 하지만 아버지는 아니었노라. 아버지에겐 인간의 여자에게서 얻은 배다른 동생 단벽(박병은 분)도 있었노라.
내 명성이 오를수록 아버지는 날 멀리했노라. 아버지는 잊었음이 분명했노라. 날 아라문 해슬라로 만들겠다던 당신의 약속을. 아라문 해슬라가 되면 내 피의 저주도 풀리리라 장담했던 그 시절의 약속을.
하지만 난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노라. 나 때문에 죽은 내 동무들과 그 가족들에게 한 맹세를. 난 다짐했노라. 꼭 아라문 해슬라가 될 거라고. 그러므로 그대들의 희생은 헛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신이 될 자에게 바쳐진 영광스런 제물인 것이라고.
그러니 연맹장 자리가 단벽에게 계승돼선 안됐노라. 아버지는 내 길을 막아서는 안됐노라. 결과적으로 내 배덕의 칼은 아버지 산웅 어라하의 목을 베어버렸노라.
이제 와 얘기지만 난 사람을 죽이는 걸 정말 싫어하노라. 내 동무를 죽인 것도 그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였노라. 아버지를 벤 것도 연맹인들의 피를 아끼기 위해서였노라. 난 진정 사람들의 두려움이 아닌 예쁨을 받는 권력자이고 싶었노라. 피로 물든 폐허 속에 서고 싶지 않았노라.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았노라.
하지만 흰산족 아사론(이도경 분)이 날 함정에 빠트렸을 때 알았노라. 권력의 일엔 반드시 피가 따른다는 것을. 산 자의 권리는 오로지 죽은 자 위에서만 군림할지니.
피의 길은 이어졌노라. 숨쉬듯 목을 베었노라. 물처럼 피를 마셨노라. 초원을 달리던 아이는 더 이상 없노라. 말발굽으로 짓밟는 전사만이 남았노라. 그리하여 세상의 적은 단 하나만 남았노라. 이나이신기 은섬(이준기 분)이 이끄는 아고족의 무리들.
그러는 중 일이 생겼노라. 감히 벌어져선 안될 일이었노라. 떼사리촌의 하찮은 것들이 나, 재림 아라문 해슬라 타곤의 아들 아록을 납치했노라. 아무 잘못 없는 작은 아이를 잡아갔노라. 사랑만이 충만한 두 눈을 가리고, 앙증맞게 안겨오던 두 팔과, 나비를 쫓아 들판을 종종거리던 두 발을 묶은 채 빛 한줌 없는 어둠 속에 팽개쳤노라.
분노가 일었노라. 찐득한 살의가 피어올랐노라. 다시 말하지만 내 아이는 죄가 없노라. 내 용맹을 증명하라면 기꺼이 하겠노라. 혼자 쳐들어 갔노라. 죽이고 죽이고 또 죽였노라. 베이고 찔리기도 했노라. 아록의 어미 태알하(김옥빈 분)도 뛰어들었노라. 아록의 의붓형 사야(사실은 은섬)도 가세했노라. 우리 모두는 피를 흘렸노라. 보랏빛 피가 모두의 옷을 적셨노라. 아록은 구했노라. 하지만 여전히 떼사리촌의 무리들은 물러서지 않았노라.
그때 아스달의 군대가 진입했노라. 떼사리촌의 무리들은 남김없이 도주했노라. 군사들로 빼곡한 가운데 우리는 서있었노라. 군사들의 시선은 한 곳으로 모여들었노라. 내 구멍 뚫린 몸에서 흘러나오는 보랏빛 피에. 그 경악의 눈빛들과 그 침묵의 아우성에 우린 질식해 갔노라.
그때 방울소리와 함께 등장한 것이 탄야 니르하였노라. 그녀는 아라문 해슬라의 피가 보랏빛였음을, 그가 이그트로 태어났음을, 그리하여 보랏빛 피가 아사신의 축복임을 선포했노라. 마침내 난 재림 아라문 해슬라가 되고 말았노라.
하지만 난 알고 있노라. 이 선언만으로 내가 인정받을 수는 없다는 걸. 이그트를 멸시하던 인간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으리란 걸. 하여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노라. 어떤 혈겁도 주저치 않으리니. 오라! 권력의 일이 무엇인지 알려주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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