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하다.
거대한 예산이 들어간 블록버스터급은 아니지만, 한 편의 영화가 대작들을 제치고 흥행에 성공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한국영화 ‘잠’으로 신인감독 연출에, 배우 정유미와 이선균의 재회로 쾌거를 이뤄냈다. 손익분기점인 80만 명을 뛰어넘고 100만 관객을 돌파한 것.
18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를 보면 전날(17일) ‘잠’은 11만 3057명을 동원해 일별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지난 6일 극장 개봉한 ‘잠’은 12일 연속으로 1위 자리를 유지했다.
‘잠’(감독 유재선,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제작 루이스픽처스)은 행복한 신혼부부 현수(이선균 분)와 수진(정유미 분)을 악몽처럼 덮친 남편 현수의 수면 중 이상행동,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끔찍한 공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리 영화.
신예 유재선 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옥자’(2017) 연출부 출신으로 단편영화 ‘부탁’(2018) 이후 5년 만에 장편 데뷔작을 내놓게 됐다. 그리고 어제(17일)까지 ‘잠’의 누적 관객수는 103만 1030명으로, 손익분기점인 80만 명을 돌파하고 흥행작으로 거듭났다.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들 가운데 현재까지 손익분기점을 넘은 작품은 ‘범죄도시3’(감독 이상용), ‘밀수’(감독 류승완), 그리고 ‘잠’이다.
비교적 작은 사이즈인 ‘잠’의 흥행 성공을 모두가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신인감독과 베테랑 배우 조합을 떠나, 이야기가 묵직하게 차고 나가는 힘이 있어야 흥행할 수 있다는 영화의 진리를 입증했기 때문이다.
장르를 하나로 규정하지 않고 멜로, 스릴러, 오컬트 등 여러 장르를 적절하게 섞어 상업영화로 받아들여지게 만든 덕분이다. 요즘처럼 자극적이고 즉흥적인 시대에 혼합 장르만이 흥행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어떤 장르든 보는 내내 관객들의 호감을 쌓으면 된다.
무엇보다 이제는 ‘천만 관객 동원’이 목표인 시대는 끝났다. 각 영화마다 순제작비와 마케팅 비용까지 포함한 간접 비용을 회수하는 게 바로 흥행으로 분류되는 시대다.
2023년 유달리 한국영화는 양극화 현상이 뚜렷했다. 지난해는 물론 코로나 이전인 2019년의 박스오피스와 비교해보면 시장 하락세가 확연하게 눈에 띈다. 큰 영화라고 해서 잘되고 작은 영화라고 어렵다기보다 언론 및 평단,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실관객들의 호평을 받아야 장기 흥행할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신인 감독이 이걸 해냈으니 더 박수를 받을 일이다.
어마어마한 관객 동원을 꿈꾸기보다 앞으로 ‘잠’의 행보를 걷는 한국영화가 꾸준히 나올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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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화 포스터, 영화 스틸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