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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의 SK랩북] ‘76일의 인생 수업’ 김강민, 종강은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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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앞으로 5년은 더 할 수 있겠는데요”

SK의 2군 및 육성 시설이 위치한 강화SK퓨처스파크의 트레이닝 코치들은 한 베테랑 선수들의 몸 상태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만 36세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젊은 선수들 못지않은 신체적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외견이나 느낌이 아닌, 각종 첨단 기기의 측정값으로도 공히 확인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칭찬을 받은 이 선수는 “립서비스 하지 말라”며 손사래를 치기 일쑤였다. 모든 수치가 건강함과 생기를 확인시켜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신감이 없었다. 오히려 괜한 위로 같았다. 스스로의 기량과 결과에 납득하지 못한 시간이 너무 길었다. 자신감이나 자존감은 이미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이었다. SK 외야수 김강민(36)의 76일짜리 수업은 이 무기력함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됐다.

1교시 : 자신만 몰랐던 사실, 주위가 일깨워주다

김강민은 2015년부터 수많은 부상과 싸웠다. 알려진 부상도 있었지만, 팀 내부에서만 아는 부상을 참고 뛴 것까지 포함하면 매년 부상에 무너졌다. 2015년은 96경기, 2016년은 115경기, 그리고 지난해에는 88경기 출전에 머물렀다. 부상과의 사투는, 곧 성적의 추락으로 이어졌다. 지난해에는 88경기에서 타율 2할1푼9리에 머물렀다. 김강민은 “작년에 홈런 5개를 쳤는데 내 느낌대로 만족스럽게 맞은 것이 단 한 개도 없었다”고 떠올렸다.

올해는 준비부터 단단히 했다. 몸 관리를 철저히 하고, 배트도 짧게 쥐어보는 등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다. 후배들의 추격이 무섭다는 것은 이미 몸으로 실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지훈련에서도 컨디션은 좀처럼 올라오지 않았다. 반대로 후배들은 저마다 장점을 뽐냈다. 결국 개막 직후인 3월 29일, 2군 강등 통보를 받았다. 1군의 콜업은 무려 76일 동안 없었다.

김강민은 “2006년 1군에 데뷔한 뒤, 부상을 제외하면 이렇게 길게 2군에 내려가 있었던 적이 없었다”고 담담하게 말하면서 “FA도 했지만 길게 무너져 보니, 다시 반등해 올라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타석에서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쫓기는 것이 있었다. 특히 올해는 내가 봐도 납득을 할 수가 없었다. 2군에 내려갈 때 아예 인정을 하고 내려갔다”고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예전처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때 김강민의 마음을 어루만진 이들이 바로 트레이닝 코치들이었다. 김강민은 근래 들어 부상으로 강화에서 재활을 한 기간이 꽤 길었다. 그래서 트레이닝 코치들이 김강민의 몸 상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코치들은 “몸을 좀 더 트레이닝하면 기술적으로도 긍정적인 부분이 많을 것”이라며 김강민을 격려했다. 이제 1군에 온 김강민은 “트레이닝 파트에 도움을 받은 것이 너무 많다”고 고마움을 표한다.

김강민은 “자신감이 완전히 바닥까지 떨어져서 갔는데 트레이닝 코치들의 격려에 힘이 났다. 코치들을 믿고, 다시 한 번 ‘해보자’라는 생각을 했다”면서 “아무래도 2군은 경기 출전도 조절을 하기 때문에 체력적 부담이 적었다. 트레이닝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길었고, 스피드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니 자신감도 붙었다. 그런 주위의 말들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이야기한다.

2교시 : 되찾은 자신감, 1군 승격의 발판이 되다

자신의 상황이 생각보다 비극적이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새로운 목표, 동기부여가 생겼다. 간신히 무기력함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급하지는 않았다. 마냥 1군을 좇지도 않았다. 이 정비의 시간을 기회로 여겼다. 김강민은 “2군에서 성적이 좋지 않으면 1군에 올라갈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올해 문제가 아닌 내년 이후까지 길게 보고 만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확실한 동기부여와 점점 나아지는 자신의 상태는 76일의 비교적 긴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쥐구멍만 찾던 자존심도 어느덧 제자리에 왔다. 김강민은 “내가 확실히 내 것을 만들면, 후배들과도 붙어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고 힘줘 말한 뒤 “이를 되찾기 위해 2군에서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치고 힘들었지만, 그런 마음가짐이 있었기에 2군에서 가서도 야구를 놓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노력은 성적으로 나타났다. 퓨처스리그를 폭격했다. 38경기에서 타율 3할6푼1리, 6홈런, 21타점을 기록했다. 18개의 삼진을 당하는 동안 사사구는 22개였다. 여유를 찾았다. 수비에서도 중견수뿐만 아니라 코너 외야수도 두루 소화하며 언제 찾아올지 모를 기회를 기다렸다.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1군의 부름은 없었지만 김강민은 땡볕의 강화도에서 항상 웃고 있었다. “몸은 다 준비가 됐다”는 자신감은 허언이 아니었다.

3교시 : 영웅처럼 등장, 반전을 만들어내다

6월 들어 성적이 처지던 SK는 반등의 실마리를 김강민을 포함한 몇몇 베테랑에게서 찾았다. 6월 13일은 76일간 수업이 끝난 날이었다. 1군에 등록됐다. 물론 시작은 그리 좋지 않았다. 제아무리 베테랑이라고 해도 1군 투수들의 공에 적응하는 시간은 필요했다. 그러나 수비는 확실했고, 이를 밑천 삼아 버틸 수 있었다. 타구 판단, 공을 쫓는 동선의 효율은 여전했다. 그리고 마침내 올라온 타격감으로 자신의 자리를 되찾았다.

김강민은 18일까지 25경기에서 타율 2할8푼6리, 4홈런, 13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936의 좋은 타격 성적을 냈다. 홈런은 팀이 꼭 필요할 때 터졌다. 성적 이상의 팀 공헌도가 있었던 셈이다. 김강민은 “우리 팀에는 타격이 좋은 선수들이 많다. 수비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있다”면서도 “팀이 어려울 때 보탬이 됐다는 데 만족한다”고 웃었다.

예전처럼 무조건 주연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없다. 음지에서 자신의 몫만 충실하게 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많은 것을 내려놓은 채 시작했고, 예전의 경험을 통해 불필요하다 싶은 욕심을 채우지 않으려고 한다. 어느덧 프로 20년차를 바라보는 베테랑다운 내공이 물씬 묻어난다. 김강민은 그래서 2군에서의 76일을 잊지 못한다. “많은 것을 배웠고, 전환점이 될 것 같다”던 김강민은 잠시 생각한 뒤 “야구를 그만둘 때까지 생각이 많이 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좀 더 진작 찾았으면 좋았을 계기지만, 후회는 없다. 오히려 이런 경험을 찾았다는 데 감사한다. 먼 미래를 생각해도 수업료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다. 76일 동안 부지런히 써 내려간 강의 노트는 두고두고 열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수업의 종강은 언제쯤일까. 야속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김강민은 이미 여러 차례 생각한 적이 있다는 주제라며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핑계를 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로 통산 1000경기를 채우고 난 뒤부터 ‘이제는 지금까지 뛰었던 시간보다, 앞으로 뛸 시간이 적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건 분명하다. 아직 정해놓은 시점은 없지만, 내 수비에 문제가 생기면, 후배들이 나보다 더 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이 들면, 이 경쟁에서 내가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미련 없이 먼저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의 여전한 가치를 생각하면 그 시점은 아직 한참 남아있는 듯하다. SK 담당기자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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