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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 I-PACE’ 산넘고 물건너 서킷까지…’신종족’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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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라고스(포르투갈), 강희수 기자]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SUV는 많다. 스포츠 유틸리티 자동차, 즉 SUV가 중시하는 덕목 중에는 오프로드 주파능력이 포함 돼 있다. 경주용 서킷을 쏜살같이 달리는 차도 많다. 스포츠카이거나 스포츠 세단을 표방하는 차라면 당연히 서킷 주행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이런 차는 처음이다. 산 넘고 물을 건너더니 서킷까지 신나게 달린다. 영국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 재규어는 이런 차를 그냥 ‘SUV’로 분류했다. 더군다나 이 차의 에너지원은 내연기관이 아닌, ‘전기’인데도 말이다. 재규어는 전혀 새로운 이 종족을 ‘전기 SUV’, I-PACE라 칭했다.

지난 5월 말, 포르투갈의 남부 휴양지 라고스에서 재규어 ‘I-PACE’의 글로벌 미디어 시승행사가 열렸다. 1주일여의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세계 각국의 자동차 기자들이 초대 돼 ‘I-PACE’를 체험했다. 재규어-랜드로버 브랜드의 중요 시장인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자동차 기자들이 초대 돼 글로벌 미디어 시승행사를 함께 했다.

비행시간을 빼면 이틀간 차만 타는 일정이었지만 프로그램은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가 했는데, 어느새 하늘과 땅이 맞닿아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드는 소로(小路)가 시야를 채우고 있었다.

이국적인 정취에 젖어 잠시 본분을 잊어버릴 즈음, ‘I-PACE’는 먼지가 폴폴 나는 자갈길을 헤쳐 나가고 있었다. 사전 고지가 없던 터라 잠시 어리둥절했다. 코스 입구에 배치 된 안전요원이 다가오더니 “지금부터는 오프로드 체험 구간이니, 차체를 높이고 드라이빙 모드를 오프로드 주행 모드로 설정하라”고 말한다. ‘I-PACE’는 혼자서 키를 높였다 낮췄다 하는 재주가 있다.

일단 오프로드 선택 버튼을 누르면 ‘I-PACE’의 서스펜션이 50mm를 높여 준다. 이 높이로도 모자란다 싶으면 차가 알아서 20mm를 더 높여준다. 키 작은 연예인들의 숨은 자존심, 키높이 구두도 7cm가 컸다 줄었다 한다면 마술 수준이다. 물론 키가 높아만 지는 것은 아니다. 고속 주행(105km/h 이상)을 할 경우에는 평소보다 10mm가 낮아진다. 또한 달리기를 멈추고 차가 정차하게 되면 하차 편의를 위해 40mm가 낮아진다. 차체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모습은 육안으로도 확인이 된다.

어쨌거나 바짓가랑이를 동동 걷어 올리고 첫 코너에 들어섰다. 전기차의 천적으로 여겨지는 개천이다. 25cm 깊이의 개천을 따라 50여 미터를 올라갔다. ‘I-PACE’가 건널 수 있는 최대 깊이는 50cm이지만 이날 시승팀이 거슬러 올라간 개천은 그 절반이었다. 전기차가 물에 빠지면 운전자가 감전 당한다는 속설은 얼토당토않았다. 재규어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I-PACE’의 배터리 팩은 효과적으로 절연이 돼 있어 감전의 우려가 없으며, 파우치형 셀의 낮은 저항력과 고급 열관리 시스템은 배터리 성능이 급격히 저하된다는 영하 40도에서도 제 성능을 발휘한다고 한다. 배터리 온도가 높을 경우에는 차량의 냉난방 시스템에 연결 된 냉각 장치가 활성화 돼 셀 온도를 제어한다.

짧지만 강렬했던 도강이 끝나자 좁은 산길이 이어졌다. 눈대중으로 그 흐름을 쫓아 보니 아뿔싸, 산등성이를 따라 까마득한 정상을 향하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오르막길의 경사는 34도, 내리막길의 경사는 38도였다고 한다. 차 안에서 이 정도의 경사를 맞는 경험은 별로 유쾌하지 않다. 놀이동산의 청룡열차가 하강코스를 위해 경사로를 오를 때의 기분과 비슷하다.

‘I-PACE’의 대응은 차분했다. 운전자의 시선에서 전방 시야 확보가 불가능하자 전방 카메라와 어라운드뷰로 앞길을 비춰줬다. 운전자는 스마트폰 수준으로 눈이 시린 터치 스크린 모니터를 보며 갈 길을 잡았다. 가속과 감속은 발을 쓰지 않았다. 이름도 복잡한 ‘전지형 프로그레스 컨트롤(ASPC)’이라는 기능이 있어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차를 일정한 속도로 유지해 준다. 3.6km/h에서 30km/h까지 속도 조절이 가능한데, 속도 컨트롤은 액셀러레이터가 아닌 손가락으로 했다. 운전대에 붙어 있는 버튼으로 속도 조절을 한다. 오프로드에서의 크루즈 컨트롤이었다. 이 기능은 상당한 안정감을 줬다. 운전자는 손가락으로 속도조절을 하면서 핸들만 움직이면 차는 공포감 없이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내렸다.

산악코스를 마친 ‘I-PACE’는 서킷을 향해 달려갔다. 알가르베 국제 서킷에 ‘I-PACE’가 올라 있었다. 15개의 코너에 1랩 4.684km를 자랑하는 최첨단 서킷이다. 서킷 주행 순서가 재미 있다. 재규어가 자랑하는 스포츠카 F-타입(TYPE)을 타고 먼저 두 바퀴를 돌며 서킷 코스를 익히는 과정이 있었다. 무모함 아니면 자신감이다. F-타입을 탄 뒤에 ‘I-PACE’를 타라고? 

자신감이었다. 배기음 대신 바람 가르는 소리만 들리는 탓에 F-타입과는 맛이 달랐지만 서킷의 극한 환경에 대응하는 능력만은 그다지 뒤처지지 않았다. 순간 가속력과 자세 제어가 중요한 서킷에서 ‘I-PACE’의 움직임은 결코 SUV가 아니었다. 고정식 파노라마 글라스 루프로 천장까지 확 트인 시야는 앉는 순간부터 내려다보는 차가 아니었다. 액셀을 밟은 다리는 앞쪽으로 뻗어 있었고, 중심은 달릴수록 낮게 깔렸다. 안전 최고속도가 200km/h로 돼 있지만 서킷의 직선구간에서 207km/h까지 바늘이 올라갔다. 재규어 관계자는 안전 최고속도를 설정한 이유로 “배터리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오프로드와 서킷 체험이 시승행사의 서프라이즈였다면 기본기 테스트는 이틀에 걸쳐 펼쳐졌다. 전기차의 대중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은 주행 거리다. 주행 거리에 대한 불안감만 씻고 나면 남는 과제는 충전 인프라뿐이다. 충전 인프라 구축은 정부의 정책적 판단과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한 작업이다.

재규어 ‘I-PACE’는 90kWh 용량의 리튬 이온 배터리를 쓴다. 이 정도면 승용차에서 감당할 수 있는 최대 용량으로 배출 되는 파워도 엄청나다. 최고출력이 400마력이며 최대토크는 71.0kg.m,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에 이르는 시간은 4.8초에 불과하다. 스펙이 스포츠카 수준이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I-PACE’는 고성능 스포츠카를 지향하고 있다.

차의 전후방 액슬에 하나씩, 두개의 전기 모터를 달고 있기 때문에 즉각적인 토크 반응이 가능하다. 앞뒤 바퀴의 구동력을 능동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첨단 4륜구동 시스템(AWD)으로 두 개의 전기모터는 시시각각 제어 된다. 배터리는 앞뒤 차축 사이에 최대한 넓고 낮게 설치 돼 차의 무게 중심을 낮췄으며 동시에 민첩한 움직임이 가능하도록 했다. 차체는 가볍고 튼튼한 알루미늄 플랫폼으로 구성 됐고, 배터리는 36개의 모듈로 짜여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스포츠카의 특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산악코스와 서킷 주행을 제외하고는 이틀간 포르투갈의 남부 구릉지대를 쏘다녔다. 첫날 160km, 이튿날 177km를 달렸다. 둘째 날 기자가 탄 차는 총 주행거리 2,682km에서 시승을 시작했다. 계기반에 찍힌 주행 가능거리는 413km였다. 오전 9시경 숙소를 출발해 중간에 점심을 먹고 오후 1시 반까지 파로 공항에 도착하는 코스였다. 공항에서 확인 한 주행거리는 2,859km였으며 주행가능 거리는 175km가 찍혔다. 충전량의 절반 가까이를 소비해 정확히 177km를 달렸다. 제원상 ‘I-PACE’의 최대 주행거리는 480km(WLTP 기준)다. 기자가 달린 거리와 남은 배터리 용량으로 단순계산해 봐도 족히 350km는 넘게 달릴 수 있다는 얘기다.

주행 거리에 대한 불안감이 없어지자 전기차는 그냥 차였다. 첫 날의 시승이 전기차가 과연 얼마나 멀리, 얼마나 오랫동안 달릴 수 있을까 하는 테스트의 심정이 컸다면 둘째 날은 주행 그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I-PACE’는 우리나라의 표준 규격인 ‘DC 콤보 타입1’을 채택해 국내에 설치 된 대부분의 공공 충전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가정용 7kWh짜리 완속 충전기를 사용하면 방전상태에서 완충까지 약 13시간이 소요 되고, 50kWh DC 급속 충전기로는 90분만에 80%까지 충전이 가능하다. 올해부터 설치 예정인 100kWh DC 급속 충전기로는 40분만에 80%까지 충전 된다. 

‘I-PACE’의 디자인은 왜 이 차를 SUV로 분류 했는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엔진이 필요 없기 때문에 보닛과 앞쪽 오버행을 짧게 했고, 짧아진 만큼 운전석도 앞쪽으로 나갔다. 덕분에 엄청난 휠베이스(2990mm)가 만들어 졌다. 이 정도 휠베이스는 전장 5미터 가까운 중대형차에서나 접할 수 있는 수준이다. 뒷좌석 레그룸은 890mm로 심하게 넉넉하다. 재규어는 전기차이기에 가능한 이 디자인을 ‘캡포워드(Cab-forwar) 설계’라고 불렀다.

이 방식은 사실상 ‘I-PACE’를 쿠페처럼 보이는 효과를 냈다. 모든 디자인에는 공기 역학이 반영 돼 항력계수는 0.29Cd에 불과하다. 전면부 상단 라디에이터 그릴은 기능상 필요는 없지만 재규어 디자인의 패밀리룩을 따르기 위해 실제처럼 자리잡고 있다. 공기저항을 낮추기 위해 그릴은 막혀 있지만 그릴 위쪽에는 앞 유리창으로 흐르는 넓은 홈이 파져 있다. 하단 그릴에는 액티브 베인(Vane)이 설치 돼 필요에 따라 그릴을 열고 닫는다.

운전석은 좌석 등받이가 문스톤 알칸타라(Moonstone Alcantara)로 돼 있다. 버킷형의 이 시트는 스포츠카를 연상시키는데 좌석의 위치도 일반 SUV에 비해 훨씬 낮게 배치 돼 있다.

이런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전기 SUV’라고 분류하는 데는 공간 활용성에 있다. 트렁크 적재용량이 656리터로 일반 중형 SUV보다 크다. 60:40으로 폴딩 되는 뒷좌석 시트를 접으면 1,453리터까지 적재 공간이 확대 된다. 프런트 후드 아래에는 내연기관 차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27리터의 수납 공간도 숨어 있다.

재규어 자동차의 라인 디렉터인 이안 호반은 ‘I-PACE’를 두고 “즉각적인 가속과 민첩한 핸들링, 넉넉한 공간과 편안함, 그리고 정교함까지 모든 것을 갖춘 완벽한 전기차”라고 말했다. 글로벌 미디어 시승행사에서 보여준 ‘I-PACE’의 모습이 꼭 그랬다. F-PACE로 SUV에 스포츠카를 구현한 재규어가 그 스포츠카를 전기차에서 구현하고 있었다. /100c@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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