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사 재발견](1)프로야구와 5·18, 부르지 못한 이름이여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8.05.14 09: 13

[편집자 주(註)]한국야구사 산책을 떠납니다. 한국야구 도입(1904년) 초창기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쳐 1982년에 출범한 프로야구의 뒤안길에 그동안 감춰져 있었거나 잠자고 있던 사실(史實)을 옛 잡지와 신문 같은 실증적 자료와 관계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재조명, 정리합니다. 이 작업은 지난 세월을 차근차근 반추하고, 왜곡된 사실을 바로 잡으려는 작은 시도입니다. 규명되지 않았던 숨어 있는 비화를 찾아서 떠나는 기약 없는 발걸음입니다.
덧붙여 이 한국야구사 재발견은 KBO가 2016년 10월호까지 발행했던, 지금은 폐간된 월간지 『더 베이스볼(THE BASEBALL)』에 연재하다가 중단된 ‘한국야구사료 산책’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점을 밝혀둡니다.
‘5·18, 광주’ 경기가 비로소 해금이 된 것은

프로야구 판에서도 5·18은 기피대상이었다. 애써 외면해야했고, 불러서는 안 될, 부르지 못할 이름이었다. ‘광주사태’로 불리다가 ‘5·18 민주화 운동’으로 제자리를 찾은 광주항쟁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다. 처절했던 광주항쟁은 프로야구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한국프로야구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전두환 군부정권의 적극적인 지지와 도움으로 출범한 것은 사실이다.
『경향신문』은 2017년 11월 20일치 “신군부, 5월 18일에는 광주에서 프로야구하지 마라” 제하의 기사에서 ‘5·18대비 광주지역 프로야구 경기일정 조정’ 이라는 국군기무사 문건을 발굴, 보도했다.
이 문건은 1986년 5월 18일 광주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 경기를 다른 지역에서 열도록 ‘5· 17을 전후한 광주권 안정을 위한 당국의 권유에 의하여 경기 일정 일부를 조정’ 한다는 내용이다. 전두환 정권이 한국야구위원회(KBO)의 경기일정 조정에도 개입, 간섭한 증거가 드러난 것이다.
실제로 그 문건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그해 MBC 청룡과 해태 타이거즈의 경기가 5월 17일에는 광주에서 치러졌으나 5월 18일에는 전주로 옮겨 시작 시간도 오후 5시에서 4시로 앞당겨 열렸다.
KBO가 발간한 『한국프로야구연감』을 전수 조사한 결과,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1999년까지 해마다 5월18일에는 광주에서 단 한 차례도 경기가 열리지 않았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광주 연고 구단인 해태 타이거즈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5월 18일만 되면 원정을 떠나 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5·18’은 프로야구 판에서 언급을 회피했던 ‘금기어(禁忌語)’였다.
해태 구단이 1982년부터 1999년까지 18년 동안 5월18일에 경기를 치렀던 것은 홈구장인 광주에서는 단 한 번도 없었고, 원정경기는 모두 11경기로 확인됐다. 1982년에는 15, 16일 이틀간 해태가 광주에서 삼성 라이온즈와 경기를 했고 5월 18일을 피해 5월 19일에는 다시 삼성과 대구에서 경기를 가졌다. 그 해 이후에는 경기 일정이 편성되지 않았거나 편성됐더라도 모조리 원정경기였다.
1983년 5월 18에 해태는 대구에서 삼성과 경기를 했고, 1984, 1985년 5월18일에는 해태의 경기가 없었다. 5월 18일 전, 후로 경기 일정이 비켜서 짜여졌다. 1986년에는 기무사의 문건대로 5월17일에는 광주에서 MBC-해태가 경기를 했으나 5월18일에는 전주로 이동해서 치렀다.
1987, 1990, 1992년 5월 18일에는 해태 경기가 아예 편성되지 않았고, 1988년과 1989년에는 해태가 인천에서 태평양 돌핀스와 원정경기를 치렀다. 해태는 1991년 5월18일에는 전주에서 쌍방울 레이더스와 경기를 가졌다. 1993년~1995년에는 3년 연속 전주에서 해태-쌍방울 경기가 편성됐다. 해태-쌍방울의 전주경기는 그 뒤에도 1997, 1998년 5월18일에 열렸다. 공교롭게도 2000년 이전에 해태가 전주에서 경기를 치른 것은 모두 7번이나 됐다.
김대중 정권 시절인 2000년에야 ‘5·18, 광주’ 경기가 비로소 해금이 됐다. 그해 5월16~18일 한화 이글스와 해태의 3연전이 광주에서 열린 것이다.
2001년부터 2017년까지 5월 18일에 광주경기에서 경기가 열린 것은 모두 6번(2001, 2006, 2007, 2011, 2014, 2017년)이었다. 2018년에는 5월18일부터 20일까지 SK 와이번스와 KIA 타이거즈의 3연전이 잡혀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5월 18일에 광주에서 1990년대 이전에는 프로야구 경기를 열 수 없었던 것일까. 그와 관련, KBO 초대 사무총장을 9년간(1982~1990년) 역임했던 이용일 전 KBO 총재직무대행의 증언을 통해 당시 상황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광주경기는 아예 빼버렸다”
‘한국프로야구 창립 계획’을 입안하는 등 한국프로야구 산파역이었던 이용일(87) 전 사무총장은 “(총장 재직 시절에) 경기 일정에 대해 정보기관에서 나에게 요청한 일은 두 번밖에 없었다.”고 기억했다.
그가 직접 작성했던 서종철 KBO 초대총재의 치적에 대한 문건(‘서종철 총재’)을 살펴보면, ‘권력의 압력으로 경기 일정 변경을 저지’했던 사례 두 가지가 실려 있다. 하나는 1982년 5월 광주(해태-삼성) 경기와 관련, ‘5·18 앞두고 운동권 소요 때문에’ 압력을 받았던 사실과, 다른 하나는 1986년 대구(삼성-해태) 경기 때 ‘야당의 대통령 직선 개헌 소요’ 우려로 경기 배정 압력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광주는 경기 취소이고 대구는 배정 압력이다.
선친 때부터 군산에서 경성고무라는 기업체를 경영, ‘군산야구의 대부’로도 잘 알려져 있는 그는 “1982년도 5월 초순(4월 하순으로) 에 있었던 일이다. 중앙정보부 관계자가 나를 찾아와 광주 야구장을 중심으로 반정부 시위대가 집결, 데모를 벌일 우려가 있으니 두 게임 모두 취소하라”고 압력을 행사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청와대 교육비서관도 전화를 걸어와 경기 취소를 종용했다. 프로야구 출범 첫해부터 그 같은 압력에 굴복하면 안 되겠다고 판단한 그는 “이미 광주, 호남 일대에 명함판 경기일정표 10만 장을 뿌렸는데 이유 없이 그만두라면 말이 됩니까. 경우대로 해야지 변경하면 절대 안 된다.”고 거절했지만 집요한 압력이 계속됐다. 광주게임은 아예 없애라는 얘기였다.
견디다 못한 이용일 총장은 서종철 KBO 총재에게 “제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되니 이것 좀 막아주십시오”라고 부탁하기에 이르렀다. 서 총재는 “나는 이 총장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오. 5월에 광주로 가서 우리 둘이 막읍시다.”고 답하면서 실제로 안기부와 경찰 등 요로에 협조 요청을 직접 했다.
서 총재는 “내가 책임을 지겠다.”며 5월 15일에 광주로 내려갔고, 경기 시작 두 시간 전에 광주구장에 직접 나가 진두지휘했다. 그날 전남도경찰청, 광주시경찰청 고위 관계자들이 광주구장에 집결했고 수백 명의 사복경찰을 경기장 주변에 배치했지만 별다른 소요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용일 총장은 “1986년에는 정보기관이 대구에서 해태와 삼성이 경기를 하도록 종용한 일도 있었다. 5월 어느 날에 야당이 대구에서 궐기대회하기로 해 관심이 야구장에 쏠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거절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당시 KBO가 권력기관의 압력을 물리칠 수 있던 것 까닭은 바로 서종철 총재가 뒤에 있었기 때문이다. 서종철 초대 KBO 총재(1924~2010. 1982~1986년 KBO 총재로 재직)는 육군사관학교 1기 출신(1946년 임관)으로 국방부 장관(1973~1977년)을 역임했고 무엇보다 전두환의 직속상관을 지냈던 터여서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것이다.
2003년 5월 1일치 『중앙일보』 연재물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가운데 이용일 총장의 ‘백구(白球)와 함께한 60년(年)’ 제23화 ‘프로기반 다진 서종철 총재’ 편에는 ‘당시 민감했던 영호남 지역감정 탓에 1982년 5월17일 광주에서의 해태-삼성, 84년 광주에서의 해태-삼성, 86년 대구와 광주에서의 해태-삼성 경기는 관계기관에서 일정조정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술회했다.
이용일 사무총장의 이 같은 증언은 2017년에 증언한 ‘단 두 차례 압력’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이는 아마도 고령으로 인한 기억력 탓으로 보인다.
이용일 사무총장이 증언한 내용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1982년에 청와대와 안기부에 하도 시달리는 바람에 그 이후에는 압력을 피하기 위해 해마다 경기일정 작성 때 내가 (5월 18일 광주경기를) 아예 빼버리라고 지시했다”고 말한 점이다. 그의 증언은 이용일 초대 총장 밑에서 경기일정 작성 등 실무 작업을 했던 이상일(60) 전 KBO 사무총장(현 야구학교장. 2009~2011년 KBO 사무총장 재임)의 증언과도 거의 일치한다.
이상일 야구학교장은 “당시 공문을 받은 것은 없다. 모든 연락은 유선으로 해 노출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그걸 어떻게 문서로 남기겠나.”고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의식을 안했다. 막상 5.18을 지나고 보니까 원정 가서 하라는 둥 압력이 내려왔다. 실제로 (5.18 광주경기를) 비워놓았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러면 아예 비워놓고 짜기로 했다. 1985년까지는 이호헌 초대 사무차장(작고)이, 그 이후에는 저도 짜고 배성호, 정금조 씨 등이 일정표를 작성했는데, 묵시적으로 안 하는 것으로 했다. 구단들이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않아 경기일정을 짜는데 부담은 없었다. 그날(5.18) 비울 수도 있는데 굳이 넣어서 말썽을 일으킬 이유가 없었다.”
현재는
정금조 KBO 사무차장은 현재 KBO 경기일정표 작성에 대해 “형평성, 종정성 확보가 우선이다. 구단들의 마케팅 요소를 고려해 주말, 공휴일 경기를 비슷하게 편성하고 이동거리를 감안한다. 격년제 편성, 어린이날 등 그런 것들이 주안점이 된다.”고 원칙을 밝혔다.
정 차장은 5.18 관련 일정표에 대해 “나는 1995년부터 작성을 시작했다. 외부 압력은 없었지만 개념은 많이 흐려지기는 했으나 묵시적인 금기였다. 굳이 피하지도 않았지만 일부러 편성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편성해서는 안 되는 경기는 아니었다. 뚜렷한 기억은 없지만 개념은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글. 홍윤표 OSEN 선임기자
사진. (중간) 이용일 작성 서종철 초대 KBO 총재 관련 문건
       (아래) 1982년 해태-삼성 경기일정 및 기록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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