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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 김기태 감독의 ‘선구자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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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71) KBO 신임총재가 주창한 ‘클린베이스볼’은 프로야구계의 ‘자정(自淨)’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야구장 안팎의 너절한 요인을 제거해 보다 나은 관전환경을 만들고 보기 좋은 야구를 해보자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정 총재가 2월 들어 10개 구단의 해외 전지훈련지를 돌면서 현장 지도자들에게 당부 겸 강조한 것도 클린베이스볼이었다고 한다.

사실 이런 일이야말로 백마디 선언적인 구호보다는 한가지 실천이 더욱 필요할 터. KBO리그가 올시즌부터 도입하기로 결정한 자동 고의4구나 비디오판독 시간제한(5분), 마운드 방 문 6회 제한 검토 등은 경기 스피드업에 따른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되겠다.

KBO리그의 지난해 경기당 평균 소요시간은 3시간 21분이었다. 이는 메이저리그(3시간 5분)보다 16분이나 길다. 일반적으로 한 경기 소요시간이 3시간 안팎일 때 관중들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관전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를 두 편 가까이 보는 시간이 걸리는 야구는 제 아무리 박진감이 넘치더라도 생리적으로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메이저리그는 지난해부터 자동 고의4구를 도입한데 이어 올해는 마운드 방문횟수를 6회로 제한하는 등 꾸준하게 경기시간 단축을 위한 ‘촉진룰’을 내놓고 있다. 일본 역시 올해부터 자동 고의4구를 실시하기로 했다. KBO 리그도 그런 추이와 대세를 따라 변화를 꾀하는 것은 당연하다.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과 경기 스피드업은 어디까지나 관전하는 팬들을 위한 일일테지만, 비단 관중 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피로도를 낮추고 불필요한 힘 소모를 아낀다는 측면에서도 지향해야할 방편이다.

그와 관련, 최근 차명석(49) MBC 야구 해설위원이 들려준 2013년 LG 투수코치 시절의 일화는 현장의 지도자들이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2013년 5월께였다. 이미 승부가 거의 결정이 난 마당에 경기가 늘어지고 오래 걸리는 일이 잦자 김기태 감독께서 ‘우리는 이렇게 바꿔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투수코치의 의견을 물었다. 투수를 교체할 때 투수코치와 선수가 같이 마운드로 올라가 경기 시간을 조금이나마 줄여보자는 얘기였다.”

당시 차명석 투수코치의 대답은 “좋은 방법이지만 그투수들은 나름대로 습관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려면 미리 겨울부터 준비해야 한다. 늦긴했지만 그래도 투수들과 서로 의견을 나누어 봐서 되는 선수부터 해보자”는 것이었다.

LG는 그 뒤 긴박한 순간에는 선수들이 ‘루틴(평소 몸에 밴) 대로’ 할 수밖에 없지만 어느정도 경기가 기울어졌을 때는 선수들도 동참하는 식으로 서서히 그 방법으로 투수교체를 시행했다. 김기태 감독은 그와 더불어 대타요원도 미리 덕 아웃 앞에서 대기하고 있도록했다. 대타로 부름을 받으면 곧바로 타석에 들어설 수 있게끔 준비를 시킨 것이다. 김기태 감독의 시도는 차명석 코치가 몸에 이상이 생겨 2014년에 현장을 떠나는 바람에 유감스럽게도 중동무이되고 말았다.

차명석 위원은 “감독이라는 위치에 있으면 (그같은 일을) 결행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감독은 야구 승부에 몰입해 그런 신경을 쓰기 어려운데, 김기태 감독은 참 힘든 시기에 그런 생각을 했다. 뭔가 다르다는 점을 느꼈다”고 돌아봤다.

차 위원은 요즘도 야구해설을 할 때마다 김기태 감독이 지휘하고 있는 KIA 타이거즈의 움직임을 눈여겨 보고 있다.

“비록 정착이 안 돼 그렇지 당시 김기태 감독의 결정은 굉장히 신선한 발상이었다. KIA로 옮긴 뒤 김기태 감독은 투수들이 민감하고 불펜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어서인지 혹시 방해가 될까봐 그렇게 못하는 것같지만 대타는 요즘도 미리 준비시키는 듯하다.”

예전에 야구팬들이 자주 볼 수 있었던 광경 중의 하나가 투수를 교체할 때 코치나 감독이 느릿느릿 마운드로 가서 불펜을 흘끗흘끗보면서 투수와 얘기를 하다가 교체투수가 몸을 제대로 풀었다 싶을 때서야 공을 넘겨받고 내려가는 것이었다. 일부 감독들은 마운드로 갈 때나 심판에게 항의하러 갈 때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고 일부러 느릿느릿 걸어가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야구경기 도중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짓들은 ‘투수가 공을 던질 때마다 덕아웃에서 포수에게 사인을 내는 것이나 투수 교체시 일부러 느릿느릿 걸어나오는 것, 상대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면 그제서야 천천히 마운드에 올라가 투수를 바꾸는 것’ 따위를 들 수 있다.

이같은 감독, 코치들의 볼썽 사나운 행태는 근년 들어 많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경기 중에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경기 흐름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불필요한 경기 시간을 단축시키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다못해 대타를 미리 준비시키는 것만해도 경기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게 차 위원의 지적이다. 김기태 감독의 선각적인 발상이 다른 감독들에게도 번져서 올해 KBO 리그에서 주류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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