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떠나가는 구본능 KBO 총재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7.12.28 11: 17

“깨끗이 물러나겠습니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10월 23일 국회 교육문화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손혜원 민주당의원이 이른바 ‘KBO 적폐논란’과 관련, 앙칼진 목소리로 구본능(68) 총재를 ‘무능’으로 몰아붙인데 대해 구 총재는 직설적으로 그렇게 응대했다.
어차피 올해 12월 말로 임기가 끝나는 구 총재가 구태여 ‘울고 싶은’ 심정을 가감 없이 내비친 데는 정치권 일각의 조직 흔들기에 대한 반발과 야속함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구 총재의 발언에서 사실과 부합되지 않은 무차별 공격에 대한 커미셔너로서의 방어본능과 더불어 최소한의 자존심이랄까, 얼핏 그런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는 근엄하신 분으로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그냥 편하게 대해주셨죠. 직원들 의견도 경청해주셨고. 여태껏 총재들은 보통 사무실에 잘 안 올라오셨는데 구본능 총재님은 낮은 자세로 사무실에 자주 들러서 공기가 나쁘지 않은지, 근무환경은 괜찮은 지 직원들과 대화하고 사무실이 썰렁하다며 화분도 직접 사다놓으시는 등 배려를 잘 해주셨지요. 기자실에서는 기자들과 야구도 함께 보시고 자장면을 시켜 드시기도 했습니다.”
KBO의 한 직원은 구본능 총재의 평상시의 모습을 그렇게 전했다. 겉치레나 의례적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난 구본능 총재의 소통 행보는 KBO의 근무 환경을 권위적이고 일방적이 아닌 민주적으로 변모 시켰다는 게 여러 직원들의 말이다.
소탈하고 진솔한 성품의 구본능 총재는 지난 11월 말 KBO 전체 직원들과 마지막 저녁자리를 가졌다는 후문이다. 그 자리에서 구 총재는 직원들과 일일이 술잔을 주고받으며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고 한다. 적폐 논란으로 외부의 차가운 시선에 시달리던 직원들을 보다 세심하게 보살펴주지 못한 데 대한 안타까움의 표시였다.
돌이켜보면, KBO는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가 판을 치며 국내 최고 인기종목인 프로야구 판을 어지럽혔다. 구본능 총재 시대(19~21대, 2011년 5월 17~2017년 12월 31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런 입김을 어느 정도 떨쳐내고 조직 안정과 1000만 명 관중 시대의 기틀을 다졌다고 볼 수 있다.
참인가, 아니면 거짓인가. KBO 적폐 논란은 아직 그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지 않았다. 세상살이의 모습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고, 숨겨진 얼굴도 있는 법이다. 무릇 공사(公私)간에 훼예포폄(毁譽褒貶)은 있게 마련이고 공과(功過)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KBO의 구본능 총재 시대는 임기 말에 벌어진 옥석을 가리지 않은 적폐 공세로 혼란을 겪었지만, 그 논란과는 별개로 프로야구 발전의 큰 방향과 흐름은 잡았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KBO가 정리해놓은 자료에 의지해서 찬찬히 살펴보면, 구본능 총재-양해영 총장 체제가 기여한 일을 확연하게 알 수 있다. 화려함은 덜할지 모르지만 역대 그 어느 총재 때보다 내실을 기하고 업적도 많이 쌓아올렸다. 구본능 총재 시대의 ‘종합 평가’는 앞 뒤 총재들의 업적과 총체적 비교 평가로 판단할 일이겠으나 7년간 KBO 수장으로 재직한 동안 널리 알려져 있거나 그렇지 못한 일 또한 그대로 평가해주는 게 마땅하다.
사실 약물이나 승부 도박 같은 부정적인 사건은 당사자의 일탈이 가장 큰 원인이다. 그 과정에서 제 아무리 제도적인 장치가 훌륭하고 규제가 삼엄하다고 할지라도 그런 방종과 일탈을 막아내기는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단체와 그 조직의 책임자가 져야할 도의적 법적 책임은 피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구본능 총재 시대는 그 무엇보다 10구단 체제를 2015년에 출범시켜 정착시켰다는 점에서 한국 프로야구가 1000만 관중시대를 나아갈 수 있는 큰 틀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크게는 리그확장과 구장 신축 등 인프라 구축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2013년에 열 번째 구단인 수원 kt 위즈를 창단하는 과정에서 프로스포츠 최초로 공개경쟁을 도입, KBO 야구발전기금 290억 원을 확보했다. 리그 확장과 더불어 초. 중. 고교 창단 야구팀과 그 인건비 지원을 통해 중학교 104팀(80팀에서 24팀 증가), 고교 73팀(53팀에서 20팀 증가)으로 늘어난 아마야구의 외형적인 성장은 유소년 야구 활성화와 야구저변 확대 측면에서 바람직한 흐름이었다.
광주와 대구에 새로운 구장이 들어서고 수원이나 대전구장의 개조, 창원시의 신축구장 구상 확정 따위는 한국야구가 고질적으로 안고 있던 열악한 시설을 꾸준히 개선해나갔다는 점에서 환영을 받았다. 야구발전위원회를 앞세워 지역 야구장 인프라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 지자체와 협의해 4대강 유역에 야구장 신축을 유도하는 등 2011년 이후 전국에서 야구장이 200여개나 증가해 급증한 사회인 생활야구 인구를 소화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었다.
올림픽이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같은 굵직한 국제대회에서 과거처럼 ‘아주 빛나는’ 업적을 쌓지는 못했지만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 프로 선수들을 파견해 금메달을 획득, 2010년 이후 아시안게임 2연패를 이룩한 것이나 2015년 WBSC(국제야구소프트볼연맹)가 주최하는 ‘프리미어12’ 대회에 프로 최정예 선수들을 내보내 일본, 미국 등을 연파하고 초대 챔피언에 올랐고 일본 NPB, 대만 CPBL등과 공조해 24세 이하의 각국 대표선수들이 참가하는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대회를 창설한 것 등도 한국야구의 국제적인 위상을 드높이고 야구외교를 강화한 성과로 봐야겠다.
2012년 부산에서 KBO 창립 이래 최초로 국제대회인 아시아시리즈를 개최해 흥행의 어려움을 딛고 대회 흑자 운영에 성공했고 2017년 WBC 서울 1라운드 개최는 세계 최고 권위의 국가대항야구대회인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국내에서 최초 개최에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밖에도 일일이 거론하기는 힘드나 연간 12억 원의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지원을 고착화하는 등 프로, 아마협회 간의 ‘소통과 협치’가 실질적인 성과를 이루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부산시-기장군 쪽의 사정으로 개관이 늦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오는 2019년에 완공될 예정인 한국야구 명예의 전당, 박물관 건립 추진은 출범 40년을 눈앞에 둔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고 승계하는 것은 물론 한국야구 역사의 정립이라는 측면에서 반드시 해야 할 작업이었다.
해가 저물었고, 구본능 총재 시대도 막을 내렸다. 이제 2018년 1월 3일 구본능 총재는 서울대 총장을 역임했던 정운찬(70) 제22대 총재에게 바통을 넘기고 떠나간다. 무보수로 봉사 했던 구본능 총재는 그야말로 야구를 사랑했던 보기 드문 기업인이었다. 새로 오는 정운찬 총재 역시 '야구예찬'에 침이 마를 지경인 인물이다.
정운찬 신임 총재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권위적인 인상을 주는 ‘총재’ 대신 ‘커미셔너’로 불러주기를 바랐다. 구본능 총재가 다져놓은 발전기틀을 그가 어떻게 확장하고 얼마만큼 ‘동반성장’ 시켜 구단들의 허리를 펴게 만들지 지켜볼 일이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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