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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 최다승 '까치' 김정수가 전하는 가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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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이선호 기자] 가을만 되면 까치 김정수(KIA 재활군 코치)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회자된다. 한국시리즈 최다승(7승)의 주인공이다. 그의 별명은 '가을까치'이다. 까치는 80년대 공전의 히트를 했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의 주인공이자 '반항의 아이콘'이었다. 억센 더벅머리에 어딘가 반항적이었던 김정수의 이미지와 어울렸다. 그는 한국시리즈를 통해 가을까치의 이름을 얻었다. 

김정수는 진흥고 시절 에이스겸 4번타자로 봉황대기 준우승까지 이끌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직구 하나로 명문고의 유명 선수들을 제압했다. 여학생들에게서 수 백통의 편지가 날아들었던 시대였다. 연세대 진학을 거부하고 해태에 입단하려고 도망까지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만일 해태 유니폼을 입었다면 고졸 1호 프로 선수가 됐을 것이다.  해태가 제시한 계약금은 2500만원이었다. 광주의 아파트 몇채 값이었다. 

까치는 신인때부터 대단했다. 정규리그 41경기에 등판해 125⅓이닝을 소화했다. 9승6패5세이브, 평균자책점은 2.65를 기록했다. 선발, 중간, 마무리까지 마당쇠로 뛰었다. 진가는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드러났다. 4경기(3경기 구원), 14⅔이닝동안 13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평균자책점 2.45, 3승을 따냈다.  신인인데도 배짱은 김성한 못지 않았다. 신인 최초로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고 기자들은 그때부터 그를 '가을까치'라고 불렀다. 

대단했던 점은 단 한번도 부상이 없었다는 것이다. 600경기에 그것도 1384이닝을 던졌던 그가 팔꿈치와 어깨에 아무런 부상 없이 프로 생활을 했다. 선천적으로 유연한 몸과 탱탱한 근육을 보유했다. 그 유연한 몸을 활처럼 이용해서 던지는 직구의 위력이 선동렬급이었다고 한다. 김응룡 감독은 지금도 "불펜에서는 김정수의 볼이 선동렬보다 나았다"고 말한다.

제구력에 약점이 있다고 하지만 9이닝당 4개 정도이니 그다지 나쁜 것도 아니었다. 김정수 코치는 현역 시절 100승을 하고 은퇴하고 싶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96년부터 소방수로 변신했고 이후 불펜투수로 뛰느라 선발 등판을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42살까지 현역생활을 했다. 그만둘때도 김성근 감독이 "더 뛸 수 있는데 아쉽다"고 말할 정도였다. 

변화구는 커브만 던졌다. 고교시절 만난 구도 기미야스(현 소프트뱅크 감독. 200승 투수)에게 배워 프로에서 주무기로 썼다. 그래서 지금도 "좌완투수는 직구 하나로도 먹고 살아야 한다. 변화구는 커브를 잘 쓰면 된다. 체인지업이나 포크볼에 맛을 들이면 어깨와 팔꿈치에 무리가 갈 수 밖에 없다. 스피드도 줄어든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김정수는 아무리 잘해도 구단이 가난해 풍족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그는 "지금처럼 FA 권리가 있었다면 열심히 했을텐데 그때는 성적이 좋아도 연봉이 크게 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보너스가 생기는 한국시리즈는 무조건 이겨야했다. 선수들은 다 그런 마음이었다"며 웃었다. 그의 한국시리즈 7승은 1986년부터 1989년 타이거즈의 4연패 과정에서 거둔 승수이다. 아직도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

1996년 우승할때는 소방수로 활약했다. 시즌을 앞두고 조계현 투수를 낙점했지만 연투가 어려워 고사했고 김정수가 소방수로 나섰다. 6승3패18세이브, 평균자책점 2.01로 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아픔을 겪었다. 3-1로 앞선 9회초 1사2,3루 벼랑에 몰렸다. 장광호를 삼진으로 잡고 박진만을 상대하다 볼카운트 2-2에서 이강철로 교체됐다. 2승2패의 분수령에서 팀은 이겼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던 장면이었다. 그러나 팀을 위해 깨끗하게 받아들였다"고 기억했다.  

김정수 코치는 타이거즈에서만 8번의 우승을 했다. 동기생 이건열 동국대 감독과 가장 많은 우승 횟수이다. 그에게 한국시리즈를 맞이하는 자세를 물었다. 김정수 코치는 "시즌과 똑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관중만 좀 많을 뿐이다. 특히 엔트리에 들어있는 선수들, 주전이든 비주전이든  모두 내가 주역이라는 생각으로 덤벼야 한다. 타이거즈는 선동렬, 김성한 등 걸출한 선수들이 있었지만 (가을에는) 다른 투수들이 훨씬 잘했고 생각하지 못한 백업타자들의 활약도 많았다. 그렇게 모두 잘해서 우승을 했었다"고 말했다. /sunny@osen.co.kr

[사진]타이거즈 30년사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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