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옥사와 정여립 이야기 ‘기축잔혹사’ 네이버에 연재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5.11.26 09: 52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년 전인 1589년에 시작된 기축옥사는 조선 최대의 정치 미스터리로 꼽힌다. 그 옥사의 중심인물인 정여립(鄭汝立)은 지금도 가장 첨예한 논쟁의 중심에 서있다.
정여립이 역모를 획책했다는 게 사실이냐, 아니면 조작된 것이냐는 아직 공식적으론 판가름 나지 않았다. 정여립 관련 모든 기록이 삭제된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기축옥사는 조작됐다는 설이 최근 들어 힘을 얻고 있다.

선조가 서인들이 판 함정이라는 걸 짐작하면서도 동서 당쟁을 이용, 자신의 왕권을 더욱 굳건히 다지기 위해 송강 정철 등을 앞세워 동인 세력을 대대적으로 제거함으로써 동인은 물론 서인들에게도 역린(逆鱗)의 결과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고의로 확대한 옥사라는 것이다.
이 기축옥사와 정여립의 이야기를 다룬 역사소설 ‘기축잔혹사’가 네이버 북스에 25일부터 연재되고 있다.
작가는 ‘민회빈 강씨’ ‘왕도와 신도’ ‘정도전’ ‘이향(李珦)’ 등을 발표한 김용상씨다.
헌데 제목이 왜 기축옥사나 정여립이 아니라 ‘기축잔혹사’일까?
황해도 감사의 밀계 한 장으로 시작된 기축옥사는 2년 넘게 이어지면서 1천명이 넘는 희생자를 냈다. 4대 사화(士禍)로 일컬어지는 네 차례 옥사에서 희생된 선비가 모두 합쳐 5백 명 정도인데 단 한 번의 옥사로 1천명이 넘게 죽고 귀양을 갔다는 건 그 옥사가 얼마나 무참하게 자행된 것인지를 짐작케 해준다. 그래서 기축잔혹사인 것이다.
이야기는 전주에 낙향해 대동계라는 걸 조직해 활동 중인 정여립이 역모를 획책하고 있다는 황해도 감사의 밀계를 받은 선조가 한 밤중에 패초(牌招)를 발령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동인이 장악하고 있던 조정의 대다수 신료들은 ‘정여립이 그랬을 리 없다’고 여겼지만 정여립에겐 역모로 몰아붙이기 좋을 만한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대동계는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이상세계인 대동사회 구현을 위해 정여립이 조직한 단체로 양반과 상민은 물론 노비들까지 모든 사람들이 매달 한 차례 한데 모여 담소도 나누고 활쏘기, 진법 훈련 등을 통해 남해안 등에 자주 출몰하던 왜구들로부터 고향과 나라를 지키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정여립은 대동계원들을 상대로 한 강론에서 ‘천하는 공공의 물건(天下公物)이며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랴(何事非君)’는 옛 성현들의 가르침을 자주 입에 올려 서인들에게 자신을 옭아맬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있다.
소설은 정여립이 조정에 있을 때 그와 교유해 그의 됨됨이를 잘 알고 있는 두 사관(史官)이 지근에서 선조와 옥사의 지휘를 맡은 정철 등 서인들이 그럴 만한 근거도 없이 마구 옥사를 확대해 나가는 것을 보고 ‘우리가 힘을 합쳐 후세 사람들이라도 옥사의 진실을 알 수 있게 수집 가능한 것들을 모아 기록으로라도 남겨두자’는데 뜻을 모으는 것으로 시작되고, 그 사관들의 시각을 따라가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젊은 층은 역사소설하면 딱딱하다고 여긴다.
작가는 이 점을 감안해 기존의 종이책 역사소설 형식을 탈피, 각주를 없애고 알기 쉽게 풀어썼다.
물론 소설적 재미를 위한 픽션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밑바탕엔 그 시대의 역사적 진실이 깔려있어 ‘소설로 읽는 역사공부’도 가능할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osenstar@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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