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길이가 아니다. 어디에 인생을 거느냐가 중요하다”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5.11.11 15: 34

[화제의 책] 손정의 비록(秘錄)-오시타 에이지 저/김선숙 역/이선민 감역/성안당
‘손정의 비록(秘錄)’이란 책을 접했다. 415쪽 분량의 책을 정독 하면서 몇 개의 키워드가 눈에 확 들어왔다. ‘열정’ ‘신념’ ‘미래를 보는 눈’ ‘인생 로드맵’ ‘자가 증식’ ‘자가 진화’ ‘리스크 테이커’ ‘가슴 뛰는 인생’ ‘즉단즉결’….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 손정의의 내면 속에 장착된 이 키워드들은 10대에서부터 80대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깊이 생각해야 할 명제들이다. 도서출판 성안당에서 출간한 이 책에는 세계 3위 정보통신 기업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의 삶과 경영철학, 미래 비전, 사업 노하우 등이 담겨 있다. 경영 논픽션 형태지만 자세히 읽다보면 인생과 경영 지침서라는 느낌이 든다. 저널리스트 출신의 작가인 오시타 에이지가 손정의 주변 인물 10여 명 이상을 인터뷰하고 썼다. 그래서 손정의에 관한 수많은 정보와 분석, 비하인드 스토리가 들어 있어 유익하다.

그럼 손정의(59·일본명 손 마사요시)는 누구인가? 이제 웬만한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 정도는 들어 보았을 것이다. 물론 그를 연구하고 그에 대해서 정통한 수많은 사람들도 있다. 최근 그는 국내 언론에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특히 지난 해 중국 인터넷 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의 뉴욕 상장과 관련해서도 손정의는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2000년 손 회장은 가난한 청년 기업가였던 마 회장과 만난 지 6분 만에 2000만달러(약 240억원)의 투자를 약속했다. 어떻게 그가 즉단즉결(卽斷卽決) 할 수 있었는지, 순간의 만남에서 미래를 볼 수 있었는지 놀랍기만 하다. 손 회장과의 회동은 마 회장과 알리바바의 급성장 모멘텀이 됐다. 마 회장은 손 회장의 지원을 등에 업고 사업을 키워나갔고, 결국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의 주인이 됐다. 알리바바그룹의 뉴욕증시 상장으로 최대주주인 소프트뱅크는 약 9조 엔의 가치 상승을 창출했다. 그 결과 손 회장은 일본 최고 부호 자리에 올랐다. 물론 마 회장은 자산 220억달러(약 26조3000억원)로 중국 제일의 부자가 됐다. 올해에도 손 회장은 한국의 쿠팡에 1조1000여억 원을 투자했다. 과연 쿠팡이 제 2의 알리바바가 될지 흥미롭게 지켜 볼 일이다.
주지하다시피 손정의는 재일교포 3세다. 1957년 8월11일에 일본 사가현 도스시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일본 사회에서 빈곤한 재일 한국인들은 천민이나 다름없었던 시대였다. 정의(正義)란 이름은 그의 아버지 손삼헌이 ‘언제나 정의롭게 살라’는 뜻으로 지은 것이다. 손정의는 할머니를 통해서 어떤 처지에서도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돼지를 기르던 할머니는 돼지에게 먹일 음식 찌꺼기를 모으기 위해 매일 아침 리어커를 끌어야 했다. 손정의는 당시에는 그런 처절한 상태에서 감사를 이야기 하는 할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중에 사업을 하면서 할머니의 진정한 말 뜻을 알게 됐다고 한다. 재일 한국인에 대한 인종 차별이 심한 일본 사회에서 손정의는 귀화를 하지 않고 한국 이름을 고집했다. 기개가 곧은 가정 분위기에서 따른 것이리라.
▲ 열정과 신념(인생은 길이가 아니다. 어디에 인생을 거느냐가 중요하다.)
중학교 3학년때 손정의는 일생을 좌우할 한 책을 만났다. 시바 료타로가 메이지 시대의 개혁가인 사카모토 료마의 삶을 그린 역사 소설 ‘료마가 간다’가 바로 그 책이다.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의 막부 말기의 격변기에 짧은 인생(31세에 암살당함)을 살았던 인물로 일본이 도쿠가와 막부체제를 종식시키고 일왕 중심의 중앙집권적 근대 국가로 재탄생 하는 길을 여는데 크게 기여했다.
손정의는 새로운 일본을 꿈꾸며 짧았지만 불꽃같은 인생을 살았던 사카모토 료마에게 매료됐다. 료마의 삶을 통해서 본 인생은 길이가 아니었다. 어차피 모두가 한 생을 살다가 떠난다. 어디에 인생을 거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을 읽고 난 그는 내면의 다짐을 한다. ‘피가 끓고 힘이 넘치는 일을 하고 싶다!’ 그는 단지 밥만 먹고 세월을 죽이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다. 료마처럼 완전히 탔다고 생각될 만큼 자신을 연소시키고 싶었다.
‘인생은 길이가 아니다’라는 깨달음은 1982년 급작스런 중증 간염으로 5년이라는 시한부 삶을 선고 받았을 때에도 다시 상기 되었다. 당시 소프트뱅크 창업 2년째 닥친 병마로 병석에 누운 상태에서 그는 결심한다. “그래, 인생은 길이가 아니다. 한정된 인생을 마음껏 살아보자고.” 투병 중에서도 책은 읽을 수 있었다. 투병을 하며 그는 4000여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재무제표를 보며 회사 전체의 회계를 연구, 새로운 시대를 준비했다. 병마도 그의 열정과 신념을 꺾지 못했다. 결국 그는 시한부 인생을 딛고 1986년에 다시 소프트뱅크로 복귀할 수 있었다. 손정의 인생의 황금기는 그 때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긍정적이고 적극적 마인드의 소유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어차피 인생은 한번 뿐이다. 그 수십 년 동안 자신의 생명을 태울 수 있는 것이 없다면 그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겠느냐가 그의 질문이다. 지향하는 확실한 것이 있다면 생명이 다하는 5분전에 “아, 참으로 즐거운 인생이었다. 의미있는 인생이었구나”라고 회고할 수 있다. 그것이 성공 인생이라는 것이 손정의의 지론이었다.
▲ 미래를 바라보는 눈(망설여질 때일수록 먼 앞을 봐라)과 즉단즉결(卽斷卽決)
손정의는 19세의 나이에 인생 50년 계획을 세운다. 인생의 로드맵을 일찍부터 작성한 것이다. 5단계로 구성된 그의 인생 로드맵은 다음과 같다. ‘20대에 창업해 이름을 알린다. 30대에 1000억 엔이나 2000억엔 규모의 운영자금을 마련한다. 40대에 1조엔, 혹은 2조엔 규모의 큰 사업에 승부를 건다. 50대에 사업을 완성시킨다. 60대에 다음 세대에게 물려준다.’
인생 로드맵에 따라 그는 직선 인생을 살았다. 짧디 짧은 인생길에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선 일직선으로 달려야 했다. 그는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술회한다. “곧장 가지 않고 다른 곳에 들러 가며 이룰 수 있는 대업은 하나도 없습니다. 최고 경영자는 대업에 대해 비전을 갖고 한정된 인생을 일직선으로 전진해 가야 합니다. CEO가 그린 그림이 모든 것을 좌우 합니다.”
손정의는 자신이 주도적으로 그린 미래의 삶을 현재에 살았다. 현재까지 그의 인생은 19세 때 그린 로드맵대로 움직여지고 있다. 19세에 쓴 그의 인생 로드맵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손정의는 조직에 들어가지 않고 20대에 창업했다. 미국 버클리대에서 공부한 그의 스펙이라면 충분히 괜찮은 회사에 들어가서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인생의 큰 그림을 그렸기에 스스로 조직을 만들 것을 결심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이 한국을 방문해서 젊은이들에게 남긴 말이 인상적이다. “인생은 짧다. 창업해라!” 슈미트 회장의 조언이다.
소프트뱅크의 전신인 유니슨월드를 창업했을 때 손정의는 두 명의 임시 직원을 앞에 두고 밀감궤짝 위에서 선언한다. “두부를 세 듯 1조, 2조 매출을 세는 회사를 만들 겁니다.” 그는 매일 이 선언을 구호처럼 외쳤다. 그는 미래를 보았지만, 두 명의 직원들은 보지 못했다. 그들은 몇 개월 후에 회사를 떠났다. 두 명의 직원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손정의와 함께 미래를 보았다면 그들 역시 지금 일본의 대 부호 리스트에 들었을지 모른다. 미래를 본 자와 보지 못한 자의 차이라면 차이일 수 있다.
알리바바에 투자한 것도 미래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미래를 보는 자는 결정을 미루지 않는다. 한 순간에 결단한다. 즉단즉결(卽斷卽決)하는 것이다. 알리바바와 마윈 회장을 만났을 때 그는 미래를 보는 눈을 통해 즉단즉결 할 수 있었다. 6분 만에 투자를 결정한 당시 상황을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마윈과 5분 정도 이야기 해 보니까 느낌이 왔지요. 압도적으로 성장할 것 같은 예감이랄까. 아무튼 동물적 감각으로 결정한 셈이죠.” 그 6분만의 결정은 나중에 4500배의 결실로 찾아왔다. 사실 우물쭈물 하다가 인생이 지나간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알리바바에의 투자 뿐 아니라 일본의 보다폰 인수, 미국 3위 이동통신회사인 스프린트 넥스텔 인수, 컴덱스 인수 등에서도 그는 즉단즉결 했다. 미래를 보았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 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큰 법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미래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리스크를 테이킹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는 미래를 보려면 산의 정상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말한다. 산의 기슭에선 결코 보이지 않는 것이 정상에선 환하게 다가온다. 일단 오를 산을 정해야 한다. 정해지고 난 뒤에는 정상에서 전체를 파악하고 철저하게 전략을 세워야 한다.
▲ 자가 증식과 자기 진화
손정의는 소프트뱅크가 300년 이상 존속하는 불멸의 기업이 되기를 소망했다. 요즘과 같은 환경에선 100년은커녕 30년 이상 지속하는 기업을 만들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300년 이상 존속하는 기업을 만들기 위한 손정의의 전략은 자가 증식과 자가 진화다. 그는 번성하는 기업은 태양계가 아니라 은하계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태양계는 지구를 비롯한 행성이 태양이라는 한 축의 주위를 오로지 돌고 있을 뿐이다. 그래가지고는 더 이상 커질 수 없는 한계상황이 오며 지속하기도 어려워진다.
현재 소프트뱅크를 지주회사로 해서 관련된 회사는 1300여개에 달한다. 이 1300여개의 관련회사들의 경영자들은 각각 자신들을 축으로 한 태양계를 형성하며 자가 증식해 가고 있다. 회장인 손정의는 각 회사의 사장들에게 자가 증식할 수 있는 자율적 권한을 주기만 하면 된다. 손정의는 자가증식을 위해서 끊임없고, 적극적인 인수합병(M&A)를 했다. 특정 기술과 분야에 집중, 자가 개발만 고집해서는 300년 후의 시대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갖고 기업간의 합종연횡(合從連衡)을 꾀했다. 생명체로서 가장 번식력이 강한 ‘벌레’와 같은 기업형태를 유지하려 했다.
자가증식을 하기 위해선 먼저 모체인 지주회사가 견실해야 한다. 손정의는 사업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사업을 할지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번 선택하면 끝까지 가야 한다. 일본은 물론, 세계를 움직이는 기업을 하기 위해선 크게 성장할 분야의 사업을 찾는 것이 필요했다. 그의 말이다. “송사리 새끼로 태어나느냐, 도미 새끼로 태어나느냐, 그렇지 않으면 고래 새끼로 태어나느냐에 따라 성장 후의 크기가 결정되기 마련이다. 확률 면에서 그렇다. 규모가 작고 회전이 빠른 업종일수록 10년 후, 20년 후에는 더 이상 성장할 가망성이 없는 한계점에 이를 것이다.”
그럼 무한대 자가증식과 자기진화의 목적은 무엇인가? 바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 그 자가증식으로 인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창업 이래 소프트뱅크의 크레도(Credo·신조)는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받을 만한 일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 사람 덕분에 조금은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다.”“좀 더 풍요로워졌다.”“더 편리해 졌다.” 단순한 수익 보다는 이런 말을 듣는 것이 경영자나 회사의 성공이라는 인식이 손정의의 뼛속 깊이 각인되어있다.
▲ 나의 국적은 일본도, 한국도 아니다. 인터넷이다. 인터넷 안에 우리 미래가 있다
미래를 바라보는 리스크테이커로서 손정의는 2000년대 초반에 이미 스마트폰 시대를 예견했다. 스티브 잡스에게 아이팟과 휴대전화 기능을 담은 새로운 휴대폰, 즉 요즘의 아이폰과 같은 사업을 제안하기도 했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이미 휴대폰 단말기를 개발 중이었다.
그는 인터넷이야말로 인생을 걸만한 고래새끼와 같은 큰 사업으로 여겼다. 그래서 인터넷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의 예측대로 지금은 인터넷 시대다. 그는 미래를 보면서 선행 투자를 했다. 그래서 ‘선행투자의 귀재’라는 별칭도 얻었다.
이 책에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직후 손정의가 행한 과감한 행동에 대해서도 언급되어 있다. 그는 피해지역 네트워크 복구에 전력을 기울였으며 국내 SMS를 무료화했다. 피해 지역 이용자에게는 지불을 연장하고 휴대전화도 대여해줬다. 책임회피로 일관했던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 경영진과는 확실하게 궤를 달리하는 모습에 일본인들이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손정의는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단순한 기업가를 뛰어넘어 사회의 진보와 행복을 위해 헌신하는 참다운 장인 CEO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이 책의 저자인 오시타 에이지는 “손정의는 언젠가는 전후 일본이 낳은 위대한 경영자 마쓰시타 고노스케나 혼다 소이치로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진짜 오너의 자질은 위험을 감수할 줄 아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미래를 내다보며 위험을 감수하는 것, 그리고 그 위험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 것이 손정의식 경영 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손정의란 인물에 매료됐다. 손정의식 삶과 경영에 대해서도 깊은 배움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가 59세(1957년 생)로 요즘 같은 시대에는 아직 ‘팔팔한’ 나이라는 사실에 나름 충격이 있었다. 물론 책에는 소개되지 않은 그의 약점도 적지 않으리라. 그러나 강점을 배우기도 전에 약점을 찾는 것은 결코 유익하지 않다. 손정의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배워야 한다.
한국의 수많은 직장인들이 인생이모작을 심각히 생각하는 시기에 손정의는 우리가 보기에 모든 것을 이뤘다. 책에서 묘사된 손정의의 인생을 통해 일찍 뜻을 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 정한 뜻을 따라 직선 인생을 달리며 자기 내·외면의 모든 것을 소모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 중의 하나임을 느꼈다. 일독을 권한다. /글:이태형 기록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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