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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환의 사자후] 맥도웰 시대로 퇴보하는 한국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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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흥분과 감동은 딱 3일짜리였다. KBL이 모처럼 타오르려던 농구인기의 불씨에 스스로 찬물을 끼얹고 있다.

한국프로농구연맹(KBL)은 6일 오후 이사회를 갖고 2015-2016시즌부터 외국선수 2명 중  한 명은 신장 무제한, 나머지 한 명은 193cm 이하로 뽑기로 했다. 아울러 2,4쿼터에 한해 두 명 동시출전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수정했다. 2002-2003시즌 이후 외국선수의 비중을 점차 줄여왔던 기조를 정면으로 뒤집기로 결정한 것이다.

프로농구 흥행이 저조한 원인을 득점부진에 있다고 보고, 외국선수 2명을 동시 투입해 단순하게 점수를 늘리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과연 높아지는 외국선수 비중이 흥행을 보장할 수 있을까.

▲ 193cm의 테크니션은 오지 않는다

신장제한의 근본취지는 키는 작지만 기술이 좋은 선수들을 데려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수들의 포지션을 과연 신장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과거 시행됐던 신장제한 제도는 이미 부작용을 낳았다. ‘포지션 파괴자’ 조니 맥도웰(43)이 대표적인 선수였다.

맥도웰은 1997-1998시즌 대전 현대에서 데뷔해 정규리그 3연패를 차지한 골밑의 지배자였다. 재밌는 것은 맥도웰이 처음 190.5cm 이하의 단신선수로 분류돼 KBL에 왔다는 점이다. 110kg이 넘게 나가는 맥도웰은 육중한 몸으로 한국 골밑을 평정했다. 목이 짧은 거북이형이었지만 팔은 길었다. KBL이 재지 않는 스탠딩 리치는 200cm 선수들 못지않게 컸다.

더 웃긴 것은 맥도웰은 애초에 한국에 오면 안 되는 선수였다는 점이다. 1998-1999시즌 KBL은 단신선수 신장을 193.5cm로 늘렸다. 이 때 다시 측정한 맥도웰의 신장은 193cm가 나왔다. 맥도웰의 실제 신장은 195cm 정도는 됐다. 측정하기에 따라 5cm를 줄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맥도웰 같은 언더사이즈 빅맨이 리그를 초토화하면서 감독들 사이에서는 ‘맥도웰형’ 선수 찾기가 유행했다. 전세계적으로 이런 선수들은 널렸다.

‘우리 팀에는 하승진과 오세근이 있으니 가드형 선수를 뽑아볼까?’ 말은 쉽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내서 득점력과 골밑 지배력을 동시에 갖춘 토종선수는 찾기가 쉽지 않다. 감독들은 골밑도 볼 수 있는 외국선수 자원을 선호한다. 그래야 우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3cm의 신장제한은 전혀 실효성이 없다. 정말 가드를 뽑길 원한다면 신장제한을 훨씬 더 줄여야 한다. 언더사이즈 빅맨선발을 막기 위해 ‘몸무게 제한도 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 팬들은 한국선수가 주도하는 경기를 원한다

다음 시즌 챔피언결정전을 가정해보자. 절체절명의 중요한 순간에 반드시 득점을 올려야 한다. 4쿼터에 외국선수 2명이 있다. 여기에 에이스 혼혈선수도 있다. 붙박이 국내빅맨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감독이 한국인 가드에게 결정적인 슈팅을 맡길 확률이 얼마나 될까. 외국선수 2명이 있다면 당연히 그들에게 확률 높은 공격을 먼저 지시하는 것이 감독마음이다. 한국선수는 속된 말로 ‘공셔틀’로 전락하는 것이다.

농구는 팀내 원투펀치 두 명이 팀 공격의 절반 이상을 담당한다. 3~4번째 옵션으로 전락하는 국내선수가 과연 팀에서 얼마나 비중을 차지하게 될까. 중요한 순간에 슛을 던져보지 못하는 선수는 퇴보하기 마련이다. KBL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항상 외국선수가 마무리를 하는 남의 리그로 전락하는 셈이다. 관중들도 ‘외국선수 놀음’에 좌우되는 경기에 흥미를 잃게 된다.

과거 외국선수 2인제에서 한국 선수의 유형은 크게 세 가지였다. 외국선수에게 궂은일을 맡기는 빅맨, 외국선수에게 공을 공급하는 포인트가드, 외국선수가 처리하지 못한 공을 외곽에서 처리하는 슈터다. 전부 다 보조자였다. 외국선수가 있는 가운데 대등하게 1 대 1 개인기를 부린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아마추어시절 최고센터로 명성을 날렸던 선수도 살아남기 위해 단순한 외곽슈터로 전락했다. 한국선수가 개인기를 부릴 시간과 명분은 점점 더 줄어들게 된다. ‘테크니션 외국선수가 오면 같이 대결해서 기량을 늘리면 되지 않느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당장 자기 명줄이 달린 감독들이 실전에서 국내선수들이 기량을 늘릴 기회를 줄 수 있을까.

팬들은 최근 가장 재밌었던 시즌으로 오세근, 김선형, 최진수가 데뷔한 2011-2012시즌을 꼽는다. 자유계약으로 입단한 외국선수 1명 보유에 1명이 출전하던 시절이다. 물론 잘나가던 SK는 알렉산더 존슨이 무릎부상을 당하면서 한 번에 추락했다. 하지만 이 때 탄생한 스타가 바로 김선형이었다. 한국선수가 북 치고 장구 치고 버저비터 넣는 모습을 보면서 팬들은 쾌감을 느꼈다. 오세근과 최진수 역시 외국선수 비중이 낮은 골밑을 지배하면서 또 다른 재미를 줬다. 이렇듯 팬들은 국내선수가 경기를 좌지우지하는 경기를 보고 싶어 한다.



▲ 무늬만 FIBA룰 도입, 여전히 난무하는 헐리웃 액션

꼭 점수가 많이 나야 재밌는 농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농구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몸싸움도 매력이다. 하지만 KBL은 허용하지 않는다.

국가대표팀을 역임한 유재학 감독은 6일 가진 미디어데이에서 “몸싸움을 허용하지 않는 규정 자체가 문제다. 서로 부딪치는 격렬함도 매력이다. 스피드도 중요하지만 체육관을 찾은 관중들이 몸싸움에서 느끼는 쾌감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심판콜에서 걸려서 피한다. 외국선수 중 파울콜을 불렀을 때 ‘아~’ 소리가 한 명도 없었다. 우리나라는 다 낸다. 습관적으로 몸에 베였다. 몸싸움을 싫어하고 거부하는 것이다. 규정 자체가 바뀌어야 이겨내는 힘이 생기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올 시즌 KBL은 이런 목소리를 반영해 FIBA룰을 도입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기자가 프로농구 연습경기를 지켜본 바에 따르면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전히 유니폼 옷깃만 스쳐도 ‘삑삑’ 휘슬이 울렸다. 이를 이용하려는 선수들의 과도한 제스처도 여전했다. 한국에서 오래 뛴 외국선수는 손만 올리고 있는 선수에게 ‘들이대’ 자유투를 15개나 쐈다. FIBA룰 도입은 다른 나라 이야기였다. 국제농구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든 말든 KBL은 여전히 우물 안에서 자기 갈 길을 가고 있었다.

농구팬들의 수준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있다. 국가대표팀이 농구월드컵과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면서 몸싸움이 강한 FIBA농구의 매력에 빠진 팬들이 많다. 하지만 KBL은 여전히 반대로 가고 있다. 말만 FIBA룰 도입이다. 여전히 이를 실행하는 심판들은 과거와 똑같은 기준으로 휘슬을 불고 있다. 한국에 처음 온 한 외국선수는 감독에게 어떻게 하면 파울을 잘 얻을 수 있는지 한창 강의를 듣고 있었다. 현장의 반응이 이런데 KBL에서 아무리 FIBA룰을 도입하겠다고 해도 전혀 진정성이 없는 것이다.

▲ 총재의 독단적 의사결정, 여기가 북한인가요?

외국선수 제도변경의 가장 큰 문제점은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은 성급하고 독단적인 의사결정이었다는 점이다. KBL은 항상 총재가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갖고 잦은 제도변경을 밀어붙여 물의를 일으킨 사례가 많았다. 지난 시즌만 하더라도 한선교 전 총재가 한 쿼터 12분 제도를 기정사실로 발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백지화했던 전례가 있었다.

기대를 모았던 제 8대 김영기 총재의 행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외국선수 장단신제와 2인 출전은 김 총재가 3대 총재로 재임하던 과거의 모델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청회 등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어떠한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총재의 독단으로 제도변경을 도모하는 것은 화를 자초할 수 있다. 총재는 리그발전을 위해 여러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이지, 독단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주체는 아니다.

6일 오전 실시된 프로농구 미디어데이에서 외국선수 2인출전제에 대한 감독들의 의견을 묻는 질문이 나왔다. 대부분의 감독이 부정적이었다. 특히 전창진 감독은 “프로농구 처음 취지와 상반된 내용이다. 나도 상당히 당황스럽다. 그 부분은 논의를 많이 해야 한다. 국내선수가 위축되는 부분이 있다. 12년 만에 금메달을 땄는데 세대교체 부분이나 국내선수 발전상황이 과연 어떻게 진전될지 걱정이다. 외국선수 2명이 뛰면 국내선수가 많이 위축되고 대학선수들이 진로를 결정 못하고, 어린 선수들이 농구 하는데 상당히 애로사항 다시 반복될 것이라 걱정된다”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유재학 감독은 “외국선수 2명이 오면 흥행 보장도 의심스럽다. 농구를 좋아하는 많은 팬들과 대화를 나눌 때 옛날농구가 더 재밌었다고 한다. 용병 2명이 있어야 꼭 흥행이 되는지 의문이다. 매년 국제대회가 열리는데 국내선수 활동량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과연 옳은 결정일까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프로농구에서 가장 잔뼈가 굵은 두 감독의 목소리는 파장이 컸다. 그 자리에 있던 김영기 총재는 결국 도중에 자리를 떴다. 좋은 취지의 제도변경이었다면 총재가 직접 팬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하지만 김 총재는 사양했다.

미디어데이에서의 한차례 소동에도 불구하고 KBL은 6일 오후 이사회에서 외국선수 2인 출전을 통과시켰다. 이후 각종 게시판에서 팬들은 ‘여기가 북한인가요?’, ‘이제 김선형도 공셔틀이나 해야겠네’, ‘이종현도 다른 직업을 알아봐야겠다’며 KBL을 조롱하고 있다.

KBL과 김영기 총재는 어느 때보다 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OSEN 서정환 기자  jasonseo34@osen.co.kr

<사진> 조니 맥도웰 /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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